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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노라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5월 20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14-25)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 내용은 그저 음미하고 지나가는 것이 낫겠다.’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이 내용을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언가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뜻 깊은 구절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24-25)   이 두 구절만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세상 어느 종교에서 이런 절규의 소리가 있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절규입니다. 고통과 괴로움을 겪을 때, 어렵고 비참한 일을 겪을 때 누가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겠습니까? 이 세상 어디에 이만한 표현이 있을까요? 도를 닦는다며 몸트림을 하고 참선을 하며 정신통일을 해도, 이만한 것은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이와 비슷한 소리를 하면서 절망에 빠지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행에 들어간 많은 종교인들이 울부짖듯 부르짖는 그 소리는 희망도 소망도 없는 절규뿐입니다. 하지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는 이 말은 새로운 희망을 위한, 새로운 희열을 위한 절규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그러한 절규의 소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참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상에는 자기 몸을 복종시킨다며 찬물에 들어갔다 나온다거나 뜨거운 불을 통과한다거나, 뙤약볕이나 추운 곳에 꿇어앉아서 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종교 의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이 마음은 그런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이러한 소리를 한 번 크게 부르짖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어떠한 몸트림을 하고 있었는가를 보십시오. 그 소리는 육체의 것이었습니까, 육체를 집으로 삼고 있는 영혼의 것이었습니까? 이 말씀에 ‘지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오는데, ‘지체’의 사전적인 의미는 팔다리와 몸입니다. 그 팔다리와 몸은 우리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우리 육체인 이 그릇이, 즉 피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 육체적인 것을 좋아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움직이려는 힘 때문에 내 속에 변화된 마음이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사람이 그 육체와 함께 살려고 하니 괴로움이 함께 따른다는 그 심정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토로한 것입니다.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 나로마서 7장 14절부터 보겠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우리가 율법이 신령한 줄 알지만 나는 육신에 속해 죄 아래 팔렸다.’ 여기서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위치에 서 있는데 그러한 내가 율법이 신령한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에게는 육신적인 조건이 상당히 많이 따르고, 그것들이 나를 즐겁게 해 주며 세상으로 끌어갑니다. 그렇게 자꾸 나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믿는 사람이라면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이며, 깨끗하고 모든 사람을 정죄할 만큼 정확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를 알지 못하던 때에 죄가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만큼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어떠하냐 하면 육신에 속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사람, 팔다리가 있는 이 몸속에 있는 “나”라는 사람이 육신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잠을 자면 내 몸은 분명히 누워서 두 눈을 감고 숨을 고르게 쉬며 잘 자고 있는데 ‘나’는 꿈 속에서 어딘가를 다녀옵니다. 꿈 속에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내’가 이 육체를 떠나면 내 가족들은 나를 위해 울 것이고 사랑하는 친구들도 모두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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