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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임대영 | 안성   5년 전 결혼을 하면서부터 제게는 말씀 앞에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남편은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직장에 다니면서 교제 가운데 진행되는 여러 일들에 동참했는데 주로 저녁마다 모였기 때문에 항상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저는 서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결혼 생활에서 오는 갈등들을 밖에서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전 서로에게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인지 결혼한 후에는 자주 싸우게 되었고, 그런 일이 거듭될수록 남편에 대한 제 마음은 점점 닫혀만 갔습니다. 머리로는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혼 후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저를 도와주지 못하는 남편을 수없이 원망했습니다. 괴로운 나날들 속에서 저는 ‘하나님, 사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무엇이 이리도 저를 힘들게 하는지도 모르고 또 이 곤고함을 벗을 방법조차 모릅니다. 이 시간들의 의미를 제발 알려 주세요.’라고 수없이 기도했습니다.결혼 1년 뒤 아이를 낳으면서 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남편의 직장이 옮겨지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사귀는 데 서툴렀던 저는 환경이 낯설어 1년 정도를 밖에 나가는 일도 없이 아이만 키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평일에는 새벽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잘 때 집에 들어왔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출근했습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저는 남편과 대화하는 방법도, 또 진실한 마음으로 말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듯했습니다.완악해진 마음속에 유일하게 남은 것은, 나도 결혼 전에 교제 가운데 진행되는 일들을 하면서 행복했으니 남편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런 남편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수차례 제 마음을 다잡고 성경을 보고 설교 말씀을 들었지만 성경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설교를 들어도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에 읽었던 성경 구절들 역시 어디로 다 날아가 버렸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고 찬송가 역시 부르려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오로지 내 인생을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삶의 곤고함을 어딘가에 다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내 이야기를 듣고 비밀을 지켜줄 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았고 기대고 의지해 펑펑 울고 싶은 대상도 찾지 못해 영육 간에 많이 외로웠습니다.결혼 전 저는 ‘하나님, 제가 결혼해도 남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그럴지라도 연약한 내 육신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육신적인 행복과 안락한 가정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바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을 사는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나’라는 사람의 차이가 참으로 컸습니다. 내 삶 속에서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잠 3:6) 는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채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조차도 내 행복의 관점을 분간하지 못하고, 그렇게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내 욕심들을 꽁꽁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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