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것이 별게 아닌 것 같아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믿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믿음이라는 것이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하물며 믿음의 절대적인 주관자가 믿을 것 없는 이 세상의 희망 없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큰 믿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귀신들린 딸아이를 살리려 예수께 청한 여자에게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8) 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눅 17:6) 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믿을 만한 대상이 흔치 않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마저도 흔들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의지한다, 기댄다, 맡긴다’는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평생 가지고 살던 직업을 내동댕이치고 뜨내기 같은 어떤 선생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선생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고, 선생을 따라간 사람들도 학식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사렛이 고향인 그 선생은 직업이 목수일 뿐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조목조목 따져보자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별 것 아닌 것 같은 인간적인 면모가 보입니다.
그런데 그 선생에게서 2천 년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훈이 발표되었고, 그 교훈을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세계 곳곳에 전파하였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이나 예일 대학 등과 같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학교들을 조사해 보면, 그 저변에는 성경의 이념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교육 기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생긴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개화기를 지나오면서 그런 학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오늘날의 교육자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느냐 하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교육에 지친 사람들이 성경을 다시 찾았을 때 ‘참된 교육을 우리가 도외시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음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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