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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의 담대한 간증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26:1-32      2000. 1. 1. / 1. 8. 강연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사도행전 26:1-32)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명한 바울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사도행전 26:1)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등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바울이 불려왔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고 로마법대로 말할 권리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죄수로서 자신을 재판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나쁘게 먹는다면 언제든 사형 당할 수도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왕 앞에서 손을 들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사도행전 26:2-3) 아그립바 왕은 헤롯 대왕의 증손으로 헤롯 왕가의 사람이었으며 특히 로마에서 총애를 받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유대인의 풍속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의 아버지는 사도 야고보를 죽였고, (행 12:1-2 참조) 할아버지의 이복형제인 분봉왕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사람입니다. (마 14:1-11, 막 6:7-28 참조)*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아그립바 왕은 그의 선조들과는 달리 생각이 깨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상당히 신사적으로 대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당신은 유대인의 풍속을 잘 아는 분이시니 제 말을 너그러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사도행전 26:4)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5-6)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엄연한 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아그립바 왕에게 말할 때, 그가 비록 자기 동족들이 사는 예루살렘에 있는 왕이기는 했지만 “내 민족”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썼습니다. 아그립바 왕에게 ‘우리 민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그립바 왕과는 구분되는 바울 자신의 위치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 헤롯 집안은 야곱의 형 에서에게서 갈라져 나와 이방 민족이 되어 버린 에돔의 후손입니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 아그립바는 유대인들에게 에돔 자손이라고 괄시를 받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말을 했을 때 아그립바 왕은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민족적으로는 유대인이 아니면서 이스라엘 왕인 자신에게 바울이 유대인으로서 자기 입장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민족에 대해 이야기하며, ‘당신은 왕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가 젊었을 때부터 예루살렘에서 생활한 모습과 그 흔적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사도행전 26:5) 바울이 “우리 종교”라고 한 것은 유대인과 바울 자신이 믿는 종교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 종교에는 사두개파를 비롯한 여러 파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은 바리새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거기에 속해 있었다고 했습니다.바울의 위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훗날 유대인임을 자부하며 이방인에 대해 좋지 않게 여기던 사람에게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립보서 3:4-5) 바울 자신이 어떤 입장에 있었던 사람인지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자신은 이스라엘 족속의 베냐민 지파이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했는데, 이런 내용을 읽으면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롬 2:28-29)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기독교의 2천 년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영적 유대인이라는 착각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럼으로써 성경에서 알아야 할 많은 내용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혼돈에 빠져 옳게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는 말씀이 있는데,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분간하지 못해 성경을 읽으면서 고민에 싸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면서도 자신은 유대인으로서의 위치를 확실히 했습니다.요한계시록을 보면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사람들, 베냐민 지파 중에 일만 이천 명, 잇사갈의 지파 중에 일만 이천 명, 유다 지파 중에 일만 이천 명 이런 식으로 다 합해서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피는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으면서 자신을 ‘영적 유대인’이라 하여 십사만 사천 가운데 자신이 포함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이스라엘 족속으로는 베냐민의 지파라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면 혼동이 일어나 성경 내용을 오해하게 됩니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요한계시록 7:4) 이것은 사도 요한이 한 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이방인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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