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25:1-27 1999. 12. 25. 강연
베스도가 도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 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사도행전 25:1-27)
베스도 앞에서 바울을 송사한 유대인들이 내용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후로는 바울이 로마까지 가는 과정과, 그 사이에 풍랑을 만나는 일이 이어집니다. 이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또는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역사가들에게나 지리학자들에게 필요한 내용입니다. 다른 어느 책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 당시 풍랑과 바다의 사정에 대해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내용은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기독교의 형태는 각각 다르지만,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건들이 기초가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근본부터 알려고 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면서 성경을 아주 가볍게,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도 닦는 사람들이 산중에 꿇어 엎드려 상상력을 동원해 기록한 책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라는 사람이 멋있게 살아간 모습이 있었기에, 또 이러한 일들이 전해졌기에 지금 우리들은 예수님을 어떤 방법으로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믿고 사는 생활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앞서 간 성도들이 세상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보여 주었던 빈틈없는 삶의 모습이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어떻게 믿어라, 어떻게 해라.’ 이런 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교훈은 그들의 행동 속에 다 나타났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마주 섰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담대하게 대처한 바울의 자세는 세상 어떤 영웅들이나 어떤 똑똑한 사람들도 감히 취하지 못할 태도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완전히 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또한 그의 동족 지도자들이 그를 죽여 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고, 이송되는 도중에 낚아채서라도 그를 죽이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토록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굴함도 없이 당당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바울은 대단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천막을 깁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로마에 가게 되었고, 훗날 거기서 사형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간 것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재판정에 가 본 사람들이나 직접 재판을 받아 본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들으면 자신이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재판이 어떤 것인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정도밖에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재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판사나 검사 같은 사람들을 볼 때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게는 자기가 목표한 것, 또 자기가 의뢰하는 확실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도 그를 비굴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보통 재판을 받게 되면 비겁해지거나 졸렬해지기 마련인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마음대로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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