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유리스
3편 주먹에는 주먹으로
“...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애굽기 21:23-25)
3장
이튿날 아침, 아리와 키티는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갔다. 두 사람은 아랍인 부락들을 지나 예즈릴 계곡의 비옥한 땅에 들어섰다. 유대인들이 불모의 땅을 중동 제일의 농지로 바꾸어 놓은 곳이었다. 예즈릴을 지나 아리는 나사렛 거리의 한복판에 차를 세웠다. 아랍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안내가 필요하세요?”
“필요 없다.”
“기념품은요? 십자가의 나무와 성의(聖衣) 조각이 있어요.”
“저리 가거라!”
“도색잡지는요?”
그냥 지나치려는 아리의 바지를 붙잡고 아이는 말했다. “우리 누나는 어때요? 처녀예요.”
아리는 동전 한 닢을 던져주며 말했다. “차를 지켜라.”
나사렛은 온통 악취로 진동했다. 거리에는 소와 말의 배설물이 가득했고, 애처롭게 구걸하는 눈 먼 걸인, 맨발에 남루한 옷을 걸친 불결한 아이들이 들끓었다. 곳곳에 파리 떼가 날아다녔다. 전날 다비드와 갔던 예루살렘의 거리 풍경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똑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유대인과 아랍인의 생활 모습은 아주 달랐다. 키티는 그 점이 의아했다.
키티는 아리의 팔을 꼭 잡고 시장을 지나 마리아의 부엌과 요셉의 목수 공방이었다는 곳으로 갔다. 나사렛을 떠나면서 키티는 두통을 느꼈다.
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했던 카프르 가나의 교회 앞에서 또 차를 세웠다. 그 교회는 아랍인 부락 안에 위치해 있었다.
키티는 지난 며칠 동안 본 모든 것들을 소화하려 노력했다. 작은 땅이었지만 피와 영광의 흔적들이 구석구석 스며든 땅이었다. 거룩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희열이 혐오감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었다. 키티는 성지의 어느 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사기 노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와 같은 의혹을 경험하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역설과 모순이 뒤엉켜있었다.
아리가 야드 엘의 문을 들어선 것은 꽤 늦은 오후였다. 그는 화단이 꾸며져 있는 작은 주택 앞에 차를 세웠다.
“참 아름다워요, 아리.” 키티가 말했다.
곧 문이 열리고, 사라 벤 카난이 안에서 달려 나왔다.
“아리! 아리!” 사라는 아들의 품에 안겼다.
“샬롬, 어머니!”
“아리, 아리, 아리....”
“울지 말아요, 어머니.... 울지 마세요.”
키티는 거대한 풍채의 바락 벤 카난이 뛰어나와 아들을 얼싸안는 모습도 바라보았다.
“샬롬! 아버지.”
노령의 거인은 아들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면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좋아 보인다, 아리. 건강하구나.”
사라는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말했다.
“고단하지, 아리. 여보, 이 아이가 무척 피곤한 모양이에요.”
“괜찮아요, 어머니. 같이 온 사람이 있어요. 캐서린 프레몬트 부인이에요. 내일부터 간 다프나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프레몬트 부인이군요.” 바락은 큰 손으로 키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야드 엘에 잘 오셨소.”
“그래요. 잘 왔어요. 음식을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자, 자, 들어가요.” 사라는 키티의 허리에 한 손을 올리고 집 안으로 이끌었다.
그때 아리의 여동생 요르다나는 간 다프나에 새로 온, 엑소더스 호에서 내린 아이들 앞에 서 있었다. 키가 무척 크고 다리가 날씬한 요르다나는 팔마크의 대원답게 걸음걸이가 무척 시원했다. 붉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요르다나에게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팔마크에서 요르다나에게 지시한 일은 열네 살 이상 되는 어린이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요르다나는 그 책임자로서 간 다프나에 와 있었다. 간 다프나는 훌레의 여러 부락에 보내는 무기를 숨기고 밀송하는 기지의 하나로 무척 중요한 곳이었다.
“내 이름은 요르다나 벤 카난이에요.” 요르다나는 엑소더스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으로 몇 주일 동안 여러분은 첩보활동, 연락활동, 무기 소제와 사용법, 곤봉 쓰는 법을 배울 것이며 몇 차례 전국 도보 여행을 할 예정입니다. 팔레스타인으로 온 지금, 여러분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머리를 숙이거나 공포를 느끼는 일은 절대로,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에레츠 이스라엘에서는 여러분의 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힘을 합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일 우리는 첫 도보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우리는 산을 넘어 북쪽의 텔 하이로 갑니다. 제 아버지는 약 60년 전에 텔 하이를 지나 팔레스타인으로 오셨어요. 거기는 우리의 위대한 영웅 요세프 트람프레도가 전사한 곳이고, 그의 무덤도 있습니다. 다프나의 동상이 훌레를 내려다보고 있듯이, 무덤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석조 사자상도 훌레를 내려다보고 습니다. 사자의 몸에는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한 마디 더 보탰습니다.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조국을 갖는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얼마 후 관리사무소 건물로 들어간 요르다나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샬롬. 요르다나예요.”
“샬롬! 엄마다, 요르다나. 아리가 집에 돌아왔단다.”
“아리가요? 아리!”
요르다나는 곧장 사무실을 나와 마굿간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아라비아 종 백마 위에 서슴없이 올랐다. 안장도 없는 말에 오른 요르다나는 붉은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아부 예샤의 부락 쪽으로 달려갔다.
아리는 키티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이끌었다. “밖에 나가봅시다. 어두워지기 전에 농장을 구경시켜 주겠소.”
두 사람이 나가고 나자 사라와 바락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라는 바락의 옆으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아가씨예요. 그렇지만 아리에게는 어떨지....”
“또 극성이구려.”
“바락, 당신은 눈치도 없어요? 그 애가 그 여자를 보는 눈을 보지 못했나요? 아직도 자기 아들을 그렇게 모르세요?”
아리와 키티는 집 한쪽에 있는 화단의 낮은 울타리에 기대었다. 모샤브의 농장이 내려다보였다. 살수기가 돌면서 차가운 물을 내뿜었고 과일 나무의 잎사귀들이 저녁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공기 속에는 화단의 겨울장미 향기가 실려 있었다.
키티는 이 땅을 내다보고 있는 아리의 모습을 살짝 엿보았다. 아리 벤 카난이 이렇게 평화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처음 보았다.
“당신이 살던 인디애나와는 아주 다르겠지.” 아리가 조용히 입을 뗐다.
“이곳도 좋아요.”
아리는 키티에게 무엇인가를 더 말하고 싶었다. 그는 키티에게 자신이 집을 얼마나 많이 그리워했으며, 얼마나 이 땅에 와서 일하고 싶어했는지를 말해주고 싶었다. 그의 민족에게 있어서 땅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 달라고 간청하고 싶었다.
키티는 여전히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키티에게서 온화한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아리는 키티를 품에 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돌아서서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외양간 앞에 섰다. 닭과 오리의 울음소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아리가 부서진 문고리가 달린 문을 열었다.
“문고리를 수리해야겠군. 수리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 난 밤낮 다른 곳에 가 있고 요르다나도 집을 떠나고 아버지는 회의에 참석하러 나가시는 일이 많으니 집안을 손볼 사람이 없어 이 모양이지.”
두 사람은 외양간, 닭장, 창고를 지나 농장 끝까지 나왔다.
“여기서도 간 다프나가 보이지.” 아리는 키티의 뒤에 서서 레바논 국경 부근의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하얀 집들이요?”
“아니, 저건 아부 예샤라는 부락이오. 그 오른쪽으로 좀 더 높은 곳을 보시오.”
“아! 이제 보여요. 간 다프나는 정말 하늘 속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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