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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 죽음을 통한 자유만이 존재했던 곳, 아우슈비츠를 찾아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태복음 27:20-27)       AD 30년 경,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고 죽이고자 했다. 예수에게서 죽일 만한 아무런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 하자 유대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외쳤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이 외침은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현재까지 칼이 되어 그 민족의 뒤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유대인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유대인들은 AD 70년 로마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흩어진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유럽에 터전을 잡고 다른 민족들과 섞여 살았다. 피가 섞이고 생활 문화는 닮아갔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뿌리 깊은 선민사상과 헤브라이즘 사상을 지켰다. 이들의 구별된 생활 태도는 이민족들에게는 이질감을 불러 일으켰고, 기독교가 유럽의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름하에 기독교인들에 의해 숱한 탄압을 받았다. 그 사이에서도 유대인들은 전통적인 근면성과 신앙심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민족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축적된 증오와 시기는 결국 전쟁을 통한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불러오게 되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학살은 유럽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그중에 가장 체계적이었고 규모가 컸던 것은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당에 의해서 자행된 대량 학살이었다.       카렌의 귀에 더 많은 지명들이 들려왔다. 다나기엔, 아이바리, 골드필츠, 비바라, 포르쿤데.카렌은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 키비올리, 바르바, 마그덴부르크, 플라스초브, 스체브니, 마우타우젠, 작센하우젠, 오라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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