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느끼는 것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산상수훈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다녔던 사람들, 종교인 생활을 했던 사람들 중에, 또 종교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이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소련의 지도자 흐루쇼프라는 사람이 마태복음 5, 6, 7장을 다 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외웠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높임 받고,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분이니 좋은 이야기를 해야 될 텐데, 다른 말을 많이 두고 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잖지 못한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이전까지는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지옥이 어떤 곳이라고 말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뜨거운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혼이 난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떠한 사람이 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앞서 읽은 이 두 구절을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자신이 살인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21절 내용에 대해서 스스로 면죄부를 받은 줄 압니다. 그렇지만 22절을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으니 여자는 제외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남자나 여자나 마음은 같습니다.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 했을 때, 나는 살인을 안 했으니 괜찮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쉽습니까? 살인은 살인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에는 간접 살인도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훌륭하게 키우려 합니다. 그리고 그 자녀가 유명해져서 수천 명을 죽일 수도 있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살인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살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미워하는 상대를 죽이는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류가 살아온 이래, 첫 살인이 저질러진 이후부터, 알게 모르게 혹은 합법으로나 불법으로나 살인은 계속 행해져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전쟁시 군대에서는 앞에 있는 사람이 적이라고 배우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총을 쏩니다. 쏴 놓고는 ‘내가 미워해서 쏜 것은 아니다. 나라에서 시키니까 했을 뿐이다. 내 양심은 아프지 않다.’ 하고 돌아섭니다. 그러다가 신음 소리가 듣던 소리 같아 가 보니, 적의 군복을 입은 자기 동생이었다면 눈물이 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입니다. 가인만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칼로 사람을 찔렀거나 총으로 쐈거나 독살을 했거나 직접 죽이는 일에 나선 사람은 아주 악질로 보입니다. 그러나 펜을 가지고 기록하여 명령을 하달하기만 했더라도, 아랫사람들이 비행기로 큼직한 미사일을 싣고 가서 떨어뜨려 한 도시가 재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폭탄을 떨어트려 그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고통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이도록 명령했거나 그 폭탄을 만든 사람은 양심에 아무 가책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더 큰 악을 행했는데도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 한 민족을 말살시키려고 했습니다. 인간이 상상치도 못한 죄를 범한 것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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