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5.05>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20:17-26, 1999. 10. 30 강연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사도행전 20:17-26)     바울의 겸손과 유대인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내용은 이방인들에게 설교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했던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아시아의 첫 교회인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놓고 중요한 부탁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 내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훈이 됩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하면서, 자신이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제자들을 끌어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교회를 무척 사랑했던 바울은 자신이 떠난 후에 교회가 분열되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 것입니다. (행 20:28-30 참조)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사도행전 20:17-18)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빨리 가야 했기 때문에 에베소에 다시 들르지 않고, 자신이 있는 밀레도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을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요?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분명히 자신에게 고난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가는 도중에 고난을 겪을 것도 알았습니다. 과거에 전도하며 다닐 때에 많은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그 고난 길을 다시 가게 되리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바울은 밀레도에 도착한 후 에베소로 사람을 보냈고,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삶 자체를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삶은 베일에 싸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항상 넘칠 만큼 있었고, 그는 자기 손으로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습니다.   성경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 때문에 핍박을 당하기도 했고, 그의 이름이 나쁘게 알려진 일도 있었습니다. 에베소에는 바울이 잊을 수 없는 문제들이 겹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에베소에서 삼 년을 보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삼 년 동안 복음을 가르치고 떠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흔적을 자기 몸에 가졌다는 말을 한 바울은 (갈 6:17 참조) 에베소에서 삼 년을 보내며 에베소 교회에 지극한 정성을 쏟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렀을 때도 바울 자신이 그들을 어떻게 가르쳤고 어떻게 살았는지 너희가 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전도인으로서 바울의 인격이나 교양이, 에베소 교회 대표자들과 항상 맞닿아 있었고 서로가 잘 아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사도행전 20:19)     왜 겸손과 눈물이라고 했습니까? 유대인들의 계략 때문에 바울은 고통을 당했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마 20:28) 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히 2:11 참조), 사도 바울은 예수께 대하여 주인과 종의 관계를 분명히 지켰습니다. 예수를 주라고 부르며, 자신이 주의 종이라는 자세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그리스도의 종답게 정확한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항상 핍박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때로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을 더 겸손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성령에게 이끌려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바울을 좌우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에게는 자신의 영이 원하고 주장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1-2) 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바울의 육체의 주장이라기보다 자신의 혼, 말하자면 양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하고 엄청나게 핍박하는 동족들을 향한 그 소리는 성령이 아닌 바울의 영혼의 소리였습니다. 바울은 동족들의 계략에 굴복하지 않고, 핍박을 시련으로 여기면서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 고 했습니다.   과거에 주를 욕하고 주를 믿는 자들을 공격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유대인에게 고통을 받을 때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2-3) 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성경을 통해 바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로마서만 읽어 보아도 그렇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죄와 이방인의 죄에 대해 말한 뒤, 그 죄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정죄되어 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유대인의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되어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방인의 죄는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자기 속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 2:14-15) 하고 설명했습니다. 그 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면, 율법의 의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롬 3:24 참조 그 설명이 로마서 1장, 2장, 3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5장에서는 왜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가에 대해 설명합니다. 아담의 자손인 우리는 아담 한 사람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죄인이 되었고, 그렇게 죄인 된 우리들은 이제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5:18 참조)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 훗날 태어나실 예수님을 향한 하나의 모형이었습니다. 건축으로 말하면 하나의 청사진, 설계도와 같습니다. 그 아담에게 속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볼 때 용서되어 있다는 것을 로마서 5장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지 않느냐, 예수가 죽을 때 우리의 죄까지도 짊어지고 죽으신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살아나신 것은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