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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 바울의 목적 있는 힘찬 발걸음

-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20:1-16, 1999. 10. 23 강연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사도행전 20:1-16)     그리스도인으로서 분주했던 사도들의 삶언뜻 보기에 사도행전 20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내용은 ‘아, 이러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기도 합니다만, 무언가 숨겨진 뜻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누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문장이 정확해서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나 깊은 뜻이 담긴 내용들도 많지만, 이처럼 분주하게 다니며 행동하는 모습들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분주한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과 겉모습은 같을지 몰라도 그 여정과 생각의 성격은 전혀 달랐습니다.     다윗 왕은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되자, 아들 솔로몬을 불러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왕상 2:2 )라고 하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또 야곱은 잃어버렸던 아들 요셉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애굽에서 만났을 때, 바로 왕 앞에서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라고 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도 제 나름대로 바쁘게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사도행전의 기록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로 바빴습니까? 겉보기에는 이들이 하는 행동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목표는 세상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예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길을 걷고 음식을 드시고 대화도 나누셨지만, 그분의 짧은 삶의 길은 다른 인생의 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훗날 그분은 자신의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룩한, 모든 인간이 바라보아야 할 길이었습니다. 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고 부탁하기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발걸음은 바로 좁은 길을 걷는 걸음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길은 어떤 면에서는 피곤하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큰 사고를 겪을 뻔하기도 했고, 맞아 죽을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는 다른 여행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여정이 성경에 평범하게 서술되었지만 그 길도 역시나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걷는 길은 이 세상 어떤 위대한 사람들의 길보다 나은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책이나 위인전, 문학책,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걸었던 길은 어떠했는지 책이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인간은 계속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인류의 무거운 발걸음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 모두는 피곤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나그네가 되어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속에 나타난 부지런한 몇 사람이 걸은 길은 후대에까지 남아 전해져 왔습니다. 훗날 영광의 날에 이들에게는 그들이 걸은 길에 대한 상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걸었던 길이 거룩한 길 같아 보이지도 않고 대단하게 보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내용을 그냥 지나쳐 버리면 안 됩니다.     죄악 세상 이김으로 거룩한 길 가는나의 마음 성전 삼고 주께서 계시네  (찬송가 200장)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성도가 지은 이 찬송가의 가사에 공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의 길은 어떠합니까?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성신이 내게 계심이라” (합동찬송가 163장)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이런 찬송가가 마음에 가득 차 있어도 살아가는 생활은 또 다릅니다.     반면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람들이 살아간 삶은 참 멋있었습니다. 고린도서나 데살로니가서, 디도서, 빌립보서 등을 보면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람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떤 편지를 주고받았는지 다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경은 사실이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 구절들만이 사실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평범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평범하게 살아갔고, 평범한 여행을 했던 그 노정 하나하나가 분명한 사실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다녔던 길이나 지방, 항구 등은 분명히 현재도 있는 역사적인 장소들입니다.   세상 지식에만 밝은 어떤 교만한 사람들은, 성경이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하나의 경전일 뿐이라고 과소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떤 위대한 작가가 쓴 글 중에도 이만큼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오랜 역사를 거쳐 가며 수많은 인물들의 노정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한 사람이 쓴 서신은 다른 사람이 쓴 서신과 내용의 짝이 맞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성경은 허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가치 있는 책입니다.   우리 인간은 과거를 더듬어 보고 반성도 하며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행 20:34-35) 라고 했습니다. 그의 근면성과 떳떳함을 생각해 보면, 우리도 어떤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남 못지않게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어디를 가더라도 그 여행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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