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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 제40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8. 7. 31 강연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언젠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들어 보려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들리는 이야기를 듣다가 지금까지 성경에 대해 꽉 막혀 있었던 저의 모든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귀로 들은 이야기를 통해 변화가 생기자, 한 가지 힘이 생겼습니다. 성경을 보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 전에는 죄 때문에, 강퍅한 마음 때문에 둔했던 귀였는데 그 귀가 열리자 읽으려고 해도 읽히지 않았던 성경이 제 것이 되었습니다. 참 신비로운 일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이 새로운 생명이 나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해 기록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믿음’이라는 것은 ‘들음’으로써 생긴다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 또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들렸을 때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다 거듭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비록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기록하셨고 성경에 불변의 진리를 담아 놓으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경을 전하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 내용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성경을 전하는 사람들은 듣는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정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고 들려 줄 뿐입니다. 그러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 양심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려 옵니다. 그것은 귀로 무슨 소리를 듣는다든지 어떤 느낌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바람이 스쳐갔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요 3:8 참조), 우리 영혼의 변화도 그와 같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23-27)     이 구절에 “믿음이 오기 전에”라는 말씀이 있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믿음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면 안 됩니다. 또 설교자나 목사들이 성령을 부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온다는 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는 말씀처럼,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의 마음을 이해했을 때 내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 무언가 뜨거운 느낌이 들거나 번쩍하는 것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후에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돌이켜 보면, 거듭남을 경험했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가 정말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갈라디아서 말씀에는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말씀이 있고 “믿음이 온 후”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리고 몽학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몽학선생은 율법입니다. 우리는 먼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는 주제로 인류에 대해, 인류의 죄에 대해, 이스라엘에 대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구약 성경 내용 전체에 깔려 있는 기본 사상,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율법을 살펴본 것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피가 죄를 속한다는 말씀을 해 오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을 통해 나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 그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그대로 이해되었을 때 믿음은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내가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났듯이 조그마한 생명의 씨앗이 내 마음속에 받아들여졌을 때 그 생명이 싹트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하나님이 어디 계신다고 했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 자체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내가 읽는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지구와 해와 달과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 사이의 모든 질서와 힘의 균형을 정하시고, 생명의 법칙과 내 몸속을 달리고 있는 피의 법칙까지 정하신, 그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 마음속에 다가오고자 하십니다. 더럽고 추한 내 마음도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힘이라면 분명히 바뀔 수 있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2-7)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께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시기 전에 먼저 나타나서 예수님을 증거했고, 또 예수께서 참으로 우리의 구주이심을 말했던 요한은, 구약 성경의 말씀과 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이 보내심을 받은 이유는,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그 빛을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떠한 일을 해 주셨는지를 알아감으로써 생명 되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8-13)     세상에 창조된 모든 것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참 빛”, 즉 그림자가 아닌 진짜 빛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라고 했습니다. 그 빛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는 말씀대로 그를 핍박하고 그에게 등을 돌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어겼을 때 바벨론으로 잡혀 가 이방 민족에게 핍박을 당하는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참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을 영접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마태복음 1장을 잠깐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복음 1:18)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이루어지는데, 성경은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말하기를 남자의 피와 전혀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 인간과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배고픔도 느낄 수 있고 눈물도 흘릴 수 있었지만, 그 생명은 아담에게 유전 받은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셨던 생명력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한 여인의 몸속에 허락하셨던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태복음 1:19)     요셉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가 임신을 했으니,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줄로 생각했습니다. 잘못하면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게 생겼으니 그는 조용히 마리아를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0-21)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을 합니다. 죄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며, 내 죄를 담당하신 그분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2-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는 말씀은 이사야 7장 14절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이 기록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증거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엄청나게 많은 율법과,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역사 속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은 바로 구약과 신약의 분기점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장 13절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3-14)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모시고 다니며 함께 먹고 마시고 그분의 말씀을 듣던 사도 요한이 증거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거하셨다고 한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통해 증거하시고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직접 말씀해 오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그 구약의 말씀대로 한 여인의 몸속에 잉태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약 속 성막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성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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