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17:26-34, 1999. 9. 18 강연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사도행전 17:26-34)
하나님을 떠난 인류 역사사도 바울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말한 이 설교 내용은 상당히 고차원적이고, 또 어떤 사람의 소리보다도 더 강하고 위대한 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는 바를 확신을 가지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종교나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주장했던 것 중에 바울이 주장한 이 내용만큼 강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 내용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종교나 미신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토론할 때 참고하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바울이 이 말을 했던 아레오바고 언덕은 ‘신의 언덕’이라고도 하며, 아주 거대한 바위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당대의 위대한 사람들과 많은 철학자들이 살았습니다. 또 그 아테네를 아주 잘 사는 곳으로 만든 유명한 장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아레오바고 언덕에는 그 어떤 사람의 이름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소리 높여 외친 내용이 구리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의 이 설교 내용입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바울에게 도전적이었고 그를 비웃기도 했지만, 사도 바울이 발표했던 그 내용만은 길이길이 아테네에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설교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성경을 통해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에 기록한 이 장면은 아테네에서 벌어졌던 생생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곳 사람들에게 전한 이 내용은 여느 설교자들의 소리와는 상당히 다른,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인류와 인류의 조상을 논하고 또 인류가 처해 있는 앞날과 인류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아테네에서 한 이 말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습니까?
인류의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많은 역사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의 글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사람들은 갑자기 엉뚱한 글들을 발표하고 엉뚱한 학문들을 앞세워 사람이라는 존재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큰 과오였습니다. 인간이 처음부터 인간이었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습니다. 역사가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이나 학설들을 따르다 보니 사람의 존엄성이 파괴되었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인간됨을 포기하고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그것이 진리인 양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인간은 인간이어야만 인간에게 전해지는 특별한 소식을 알게 되는데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해 버렸기에 진리가 가려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이 삶을 힘겹게 생각하고 생존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고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 자살을 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을 지혜롭게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서서히 진화되어 발달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주 지혜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지혜에 하나를 더하려고 하다가 자기의 위치를 상실해 버린 아담의 불행을 보았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아담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은 역사를 이어 오며 많은 것을 발전시켰지만 결국은 육체가 맡겨진 세상에만 열중하고 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영혼을 만족케 하고 영혼을 살찌우는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진리의 본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잃은 바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사 53:6) 하신 말씀처럼 인간은 다 곁길로 나가서 거짓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버리는 것입니다.
창조자를 떠난 인생은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만 즐거워하다가 보이지 않는 참 것은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영혼에 대해 눈이 감긴 인생은 짧은 목숨을 이어가는 데만 급급하고 그렇게 한 생애를 보내느라 바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세월은 흘러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고 말합니다. 성경이 진정으로 사람에게 원하는 것은,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확실히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창 1:26 참조)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거기에 무엇이 더 필요한 것같이 말하는 사기꾼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하고 꾀는 마귀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랐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인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아주 당당하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단정했습니다. 이 진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 저절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법칙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창조자를 아는 힘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창조자의 능력을 부인하고, 사람은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저절로 되었다는 말은 무책임한 말입니다.
소 등에 탄 개미가 이리저리 다니며 ‘이 소는 얼마나 클까? 이 소는 몇 살일까?’ 하며 소에 대해 논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개미는 자기 생각과 잣대로 소를 판단합니다만 소에게 개미는 꼬리 한 번만 휘둘러도 나가 떨어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처럼 인간이 아무리 지구에 대해 연구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 해도 그것은 모두 창조자의 법칙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달을 개척하려고 했고, 다른 행성을 탐험하려고 인공위성도 띄웠습니다. 그렇게 인간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지구의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으니 다른 행성들을 개척해서 살아보자는 희망을 가지고 우주를 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에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기차를 타고 긴 여행을 하다 보면 너무 지루해서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과 역 사이의 거리는 정해져 있고 목적지도 분명히 있습니다. 도착해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왔다고 하지만, 달리는 동안에는 가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집니다. 인간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한없이 흐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종착지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 지구의 일부만 알 뿐 전부는 알지 못합니다. 연구를 많이 했다는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지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시 115:16) 하신 말씀대로 사람이 살도록 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다가 지구의 환경을 오염시켰습니다. 물과 공기가 오염되었을 뿐 아니라 오존층마저 뚫린 지구에서 사람은 겨우 겨우 살아갑니다.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며 인간 스스로가 자신들의 육체의 건강을 망치는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학문 또한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켜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 둔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찾기가 무척 힘들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그러한 상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전에 언젠가 미국의 어느 주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어떤 교과서에서도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진화론에 대해 모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론을 배우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 진화론은 언제든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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