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4.12>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 전해진 복음

-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17:1-15, 1999. 9. 4 강연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쫓으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사도행전 17:1-15)     유대인을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사도행전 17장 1절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여러 곳을 다니다가 데살로니가 지방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이 회당은 요즘 기독교나 가톨릭에서 말하는 예배당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7백여 년 전부터 다른 민족들의 포로가 되어 포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흩어져 살면서도 민족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모세 오경과 선지서들 때문입니다. 즉 구약 성경이 유대인들에게 있었기에 이들은 수백 년을 흩어져 지내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서기 50년 무렵인 이때만 해도 유대 땅이 아닌 곳에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정확하게 유대교를 지켰습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이런 내용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민족들이 유대인처럼 흩어져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같이 정치가 많이 발달한 시대에는 민족마다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민족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미 어느 나라에서는 일본인이 대통령이 된 일도 있었고, 하와이에 사는 일본인들은 자기들 나름의 거주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백여 년 전에는 미국으로 넘어간 중국인 노동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도시 한복판이나 근교에 차이나타운을 세워 놓기도 했습니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LA 한인촌은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기록된 이때는 유대인들이 민족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나라가 송두리째 로마에 짓밟혀 버린 상태에서 유대인들은 간접적으로 로마의 간섭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로마가 지배하는 여러 나라들, 혹은 다른 어떤 곳에 흩어져 살더라도 유대교를 철저히 지키면서 민족의 힘을 길렀습니다. 지금은 사도행전이 기록된 이때로부터 1,900여 년이 지났고 유대 민족이 전 세계로 이산된 바벨론 때로부터는 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민족이 2천 년 가까운 그 긴 세월을 흩어져 있으면서 자기 종족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었겠습니까? 유대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대인 외에는 그런 민족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훗날 자기 조국으로 돌아올 것이 구약 성경에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겔 37:21, 39:28 참조) 물론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다른 민족들에게 짓밟혔고,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게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수만 해도 거의 6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러한 불행한 역사를 겪으면서도 유대인들은 자기 조국을 그리워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 유대교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교훈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하나의 종교처럼 정립되었습니다. 그 민족을 부르고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 속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고 자신들의 종교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니 유대인들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항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인지 어떻게 증명하느냐며 따지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지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이방인에게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도착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읽는 데살로니가서는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일들이 있었고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에 훗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방에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며 피부에 와 닿는, 살아 있는 편지였습니다. 학식을 갖춘 똑똑한 사람이 자기가 터득한 세상 지식이나 학문을 가지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편지를 쓸 때면 자기 실력도 과시할 겸 해서 멋진 말로 꾸며서 써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 상황에서 군인과 가족들 사이에 오가는 편지에는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호화로운 문구는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피부에 와 닿는 직접적인 내용들이 전해집니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에는 그러한 편지 이상으로, 어떤 사명을 가진 사람이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 활동한 일들을 돌이켜보고 자신이 그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했으며 너희가 이 복음을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하라고 하는 실질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약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활동은 어떤 학자나 정치가, 어떤 단체도 흉내 낼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이 바로 사도들의 움직임이자,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살았던 성도들의 흔적이 사도들이 쓴 편지 속에 나타나 있으며, 이때 성도들이 가졌던 교제가 오늘날까지 신약 성경을 통해 전해져서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사도들의 행적은 가볍게 보아 넘길 내용이 아닙니다. &n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