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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전해진 복음

-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15:36-16:15, 1999. 8. 21 강연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 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사도행전 15:36-16:15)     마가를 택한 바나바와 갈라선 바울사도행전을 공부하다 보면 생소한 지명들이 많이 나옵니다. 한문을 널리 쓰던 시절에 한자식으로 지명을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15장 39절에 기록된 ‘구브로’라는 곳은 지중해에 있는 ‘키프로스’, 혹은 ‘사이프러스’라고도 하는 섬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다른 지명들도 모두 현존하는 지역들입니다. 16장 9절에는 ‘마게도냐’*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곳은 ‘마케도니아’라는 굉장히 유명한 곳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에 있는 지역으로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제 공부하려고 하는 내용은 지금까지 보았던 내용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복음을 위해서 같이 수고했던 두 사람이 안타깝게도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바울과 바나바를 이간시켜서 두 사람이 갈라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9장 27절에는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사도들에게 가서 바울을 소개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 헤어졌습니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나바에게 자신들이 전도했던 지역들을 방문해서 형제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인 마가라는 요한을 데려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어려움을 겪은 후 생각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가를 데려갈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자기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심히 다투었습니다. 다툰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왜, 어떻게 다투었는지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일로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으로 갔고, 바나바는 자기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자신이 태어난 구브로로 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어떤 일로 인해서 의견이 대립되어 서로 갈라지게 되었을 때 그것을 합리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싸움은 우리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싸움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싸움에 대해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도 없고 따라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 싸움은 훗날 기독교 전체가 겪어야 될 교훈을 위한 싸움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싸움의 과정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싸움의 결과는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바나바는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바울과 갈라선 이후부터는 그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바울에게 저지를 당한 마가는 당시 이 싸움의 원인이 되었지만 불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여러 서신서들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마가도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사도 바울이 이방 여러 교회에 말씀을 전하는 일에 마가를 데려갈 수 없다는 매우 확고한 주장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총책임을 맡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현재의 신앙 상태로 이 일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마가가 이때에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결정을 내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은 처음 바울을 택하셨을 때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행 9:15-16)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 6:17) 했던 바울의 말처럼, 바울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도 바울의 고통스러운 삶에 마가는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맞아 죽을 뻔했던 장소에 다시 가야 했는데 마가가 과연 같이 가서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었겠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이며 믿음이 돈독한 마가를 함께 데려가고 싶어했습니다. ‘바울 당신이 복음을 알기도 전에 이 마가의 집에서 백이십 여 명이 모여 기도를 한 적도 있어.’ 하고 주장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마가가 부잣집 아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백이십 명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다락방이 집에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행 1장 참조) 또 마가는 원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잘 도망치는 성격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같이 고난을 겪지 않고 피해 버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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