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15:12-35, 1999. 8. 14 강연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가결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사도행전 15:12-35)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사도행전 15장에는 기독교 역사의 초창기에 있었던 가장 큰 논란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은 베드로가 옥에 갇히고 스데반이 순교하고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일들 이후에 교회에 닥쳐온 가장 큰 혼란이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때 이 일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후대에도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았다면 지금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헛수고를 하다가 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때 이 일이 정확하게 판가름 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기독교는 무엇을 주장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찬송가 359장)
이 찬송가 가사에 나오는 ‘딴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면 ‘딴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찬송가만 부르셨습니까? 찬송가를 부를 때 곡에만 심취해서 가사의 뜻은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노래만 부르고는 곧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찬송가의 가사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딴 길’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때는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고 하신 말씀대로 이방인들에게 참된 길이 전해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에 대해 말하자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은혜로 구원받는 것인데, 그것 외에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고 엉뚱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한 첫 단계로 구원받은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율법에 의거한 생활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때 사도들이 모이게 된 동기나 모임 자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임은 기독교 역사상 처음 있었던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에 어떤 인물들이 모였는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바울, 바나바, 유다, 실라 같은 몇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었을 뿐, 그 이외에는 ‘장로들’이나 ‘형제들’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요즘 기독교단의 총회 때 흔히 볼 수 있는 감투 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보통 사람들보다는 조금 두드러진 면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것,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자기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열심 있는 사람들이 거짓 교리를 주장했을 때, 거짓 교리에 속지 않고 그 교리의 옳지 않음을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바울과 바나바는 다툼을 무릅쓰고서라도 거짓된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반박하고 변론하고 굳건하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열두 사도 중에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따로 택하셔서 부르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똑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또 그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말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이 함께 기뻐한 것을 보면, 바울이 가진 믿음과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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