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8. 7. 28 강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출애굽기 3:14, 15)
유대 역사와 교회의 역사우리는 앞서 우리 조상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이들이 처하게 된 운명과,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이 저주를 받게 된 사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신다는 말씀을, 아담에게는 너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뱀에게는 여인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들 속에는 구약 성경 전반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그 생명을 시한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기 전에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눈이 밝아져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된 그 한 사람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현 시대에 성경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받는, 영혼의 구원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 가운데 피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고, 아담의 후손들의 이야기 속에도 피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아담의 피에 문제가 생겼으니 그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직접 설명하셨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대장정을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로 답을 내 놓으시지 않고, 역사를 두고 숨길 것을 숨기시다가 필요할 때에 답을 내어 주시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탄이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먹도록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뱀의 머리를 밟으셔서 일을 해결하고 정리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셨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욕심이고 성급한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에 계시고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시간대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다보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의 운명과 역사를 새롭게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타나도록 정해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지, 또 그 민족의 운명을 통해 내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죄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그것이 인류 역사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것처럼, 인류가 처한 문제의 해결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이끌어내신 한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인류에게 제시하기 위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듯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생명력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민족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맡은 민족인 그들을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현 시대는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불순종함으로써 벌을 받아 죽은 것 같았던 이 민족이 계속해서 회복되고 되살아나 혈통이 이어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스라엘 역사의 대장정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이라고 해서 거창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보다도 더 소박하고, 조용히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게 된 사람들이라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모습을 볼 때 자기 마음속에서도 그렇게 생명이 싹튼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또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성경을 통해 한 번 겪었던 그 사건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볼 때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서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 민족의 역사는 ‘해 아래서’의 시간, 즉 해 아래서 우리가 바라보는 시간대로 계산했을 때, 교회의 역사보다 앞서 있습니다. 유대 민족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에 출현하는 교회의 역사를 ‘두 아들’에 비유하자면 유대 민족의 역사는 큰 아들과 같고 교회의 역사는 둘째 아들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두 번 나옵니다. (19:30, 20:16 참조) 이것을 곡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 아니면 돈벌이를 하는 데 있어 ‘지금은 내가 조금 못 하지만 나중에는 저 사람보다 나아질 것이다.’ 하는 식으로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분명 역사 속에서 유대 민족과 교회의 위치를 설명해 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해서 뒤에 나타나는 교회가 성경의 역사를 장식하고 기록한 유대 민족보다 더 영광스러운 위치에 서게 될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성립될까요? 에베소서에는 교회의 예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예정이었습니다. (1:4-6 참조) 그러나 유대 민족의 역사는 창조 이후에,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결정되었습니다. 원래 하나님 마음속에는 교회가 먼저 결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유대 민족의 역사가 먼저 나타났고, 그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그 후에 나타난 교회의 역사가 현재 이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도 두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내용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아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피에 대해서는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역사와 이스라엘과 교회의 역사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식을 낳았는데, 가인이라는 아들과 아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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