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4.09> 우리의 영혼까지 들여다보시는 하나님

 - 제40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8. 7. 27 강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2-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무엇이 유익한고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전도서 1:1-11)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상당히 철학적이면서도 정신적이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기도록 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전도서에 기록된 이러한 내용들을 철학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으로만 따지기 전에, 창조물이자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세상 모든 것이 어떠한 질서에 따라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육체의 각 세포와 뼈마디, 지체들은 각기 따로따로 있지만 그것들이 한 사람을 이루고 있듯이, 성경 말씀도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기록되었지만 전체를 한 번에 보시는 하나님의 힘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내용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내용들을 서로 맞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하신 말씀, 그리고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하신 말씀들만 읽으면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사람들이 써 놓은 글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성경 내용을 접할 때,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상태, 그리고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구약 역사를 통해 어떻게 진단하고 계시고 바라보고 계시는지에 대입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해 아래”라고 한 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하는 이 모든 질서에 대해 성경은 전제 조건을 달았는데 바로 “해 아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같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가 왔을 때 펼쳐질 시대의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한 것을 잡고 계시고 그 영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또 성경을 보면 ‘현재’라는 시간도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그 이름을 여쭈어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으로, 항상 현재에 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속성을 스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 3:13-14 참조) 하지만 그것을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현재에 산다, 현 시대를 산다고 쉽게 말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보내는 하루 일과 중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이다.’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까? 성경이 발표하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과 영원이라는 시간, 이것이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우리는 “해 아래서”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 아래서 사는 동안에는 나와 꼭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림자가 항상 나를 따라다닙니다. 왜 전도자의 말씀 중에 “해 아래서”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계속 반복됩니다. 이것은 어느 시인이, 어느 철학가가 쓴 시나 수필의 제목처럼 달려 있는 내용이 아니라, 창조주의 눈으로 바라보는 해 아래서의 인생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은 ‘현재’라는 시간, ‘영원’이라는 시간을 갈망하고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과연 이해하는가, 그렇지 못한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시작된 인간의 생애는 언젠가는 끝나는 시한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돈이 많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시간이 흐르고 육체가 스러져 가면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어떤 새로운 시간대가 그 죽음 뒤에 다가옵니다. 이 사실을 막연하게 알고 있는 이들도 있고 성경을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원’을 바라고 원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끝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인 것입니다.   이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 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그 과일을 아담이 먹는 불순종을 행함으로써 인류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아담과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짧은 생애 속에서, 마치 더운 여름날 물을 찾듯이,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듯이 막연하게 영원이라는 것을 갈구합니다.전도서 3장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는 말씀은 전도서 1장의 “해 아래”라는 그 전제 조건에 따라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어지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