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6.04>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 선지자들의 증거

- 2009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  2009. 10. 19 강연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베드로전서 1:10-11)     인생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얼마 전에 이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형제들과 약속이 있어 식사를 빨리 끝내야 했습니다. 사무실 앞 주차장에 잠깐 차를 대고 서 있는데,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직원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약속에 늦을 것 같아 조금 미안하지만 아는 체 하지 않고 돌아섰는데, 그 순간 엄청나게 큰 나무가 제 바로 뒤로 쓰러졌습니다. 만약 제가 직원들에게 갔다면 그 나무에 깔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저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 일 이후로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날 제 생이 끝났으면 개인적으로는 편안했을 것입니다. 평소 저는 그렇게 건강하지 않고, 육체적으로 고통을 많이 겪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게는 아내와 아들들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 한 가지 작은 소망은,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자녀들이 저와 함께 활동하는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서 언젠가 복음을 깨닫고, 그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 뒤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복될까 하는 기도가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사건을 겪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는 바이러스 같은 것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겪은 것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멀쩡하게 서 있던 나무가 바로 뒤에서 넘어지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기울어져 있었다거나 흔들렸던 것도 아니고, 가만히 서 있던 나무가 그렇게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속에는 “공중의 새를 보라 …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6 참조 하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는데,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더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밟고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힘을 입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만, 그것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이 성경을 믿는 이들에게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나 다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물론 나무가 그냥 쓰러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시 17:8),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하신 말씀들을 평소에 읽어 놓아서였는지, 그런 일이 닥치자 마음이 담담했습니다. 마음속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언제라도 원하시면 저를 데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내 목숨을 맡기고 산다는 것, 그분 손에 나의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말입니다. 또 그것이 내가 일평생 살면서 놓쳐서는 안 될 귀한 마음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마음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사는 것, 이 두 가지를 한번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매일 겪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있는 일이겠지.’, ‘재수가 없어서 생긴 일이겠지.’ 하고 각자 나름대로 해석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툴툴 털고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생겼다거나 가족이 세상을 먼저 떠나는 일이 생겼더라도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것이지.’ 하고 넘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다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1, 9) 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떠올려 볼 때, 과연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또 내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그 힘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모두가 생각해야 될 숙제이며 또 의무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개인적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다른 곳에 살고 있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만나서 다른 종류의 대화들을 하고 삽니다. 각자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함께 모여 있습니다. 각자의 귀와 각자의 눈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대로 보고 듣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과연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인종이 다르고 얼굴 색깔이 다르고 머리 색깔이 다른 많은 사람들과 같이 앉아서 무언가 듣고 무언가 생각하고자 하는데,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보는 방법은 개개인이 다릅니다. 내 가족이 성경을 읽는 방법이 나와 다르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성경을 읽는 방법이 나와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대하는 방법이 다르고, 읽는 성구가 다르고, 읽는 성경의 양과 속도가 달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에게 내려 주시는 복은 동일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개개인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에게 동일한 구원을 선물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행 15:11, 엡 2:8 참조)   세상의 기독교인들은 내가 성경을 읽어서 거듭난 그날 그 말씀이 내 것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듭난 날짜가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장소가 다르고 성경 구절이 다르고 거듭나게 된 계기가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그 사실은 한 날 한 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때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그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같습니다. 성경은 동일한 구원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셨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저는 멀쩡하던 나무가 갑자기 왜 지금 쓰러진 것일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쓰러지기 전까지 그 나무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쓰러지고 난 뒤 그 속을 들여다보니 속이 다 썩어서 가운데에 구멍이 크게 나 있었습니다. 나무가 쓰러질 정도로 그전부터 속이 썩어 있었던 것인데, 저는 그것을 볼 수 없었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 눈앞에 그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내 발걸음을 조절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을 수 있었구나.’ 하고 느낄 뿐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를 가지고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알아 가는 기회가 지금 나에게 주어져 있는 것에 대해, 내 맘대로 살다 보니까 우연히 함께 모이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 속에 우리 인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내가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