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서를 읽으면서 1회, 마태복음 1:1-2:6, 2000. 12. 2. 강연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를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태복음 1:1-2:6)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태복음 1장 1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저는 이 마태복음을 읽을 때마다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에 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날은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이때가 되면 세계 곳곳에서 상당히 번잡하고 대단한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마태복음을 읽을 때마다 ‘예수 탄생일이 12월 25일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는 정확한 탄생일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날을 정해 놓고 기념할 따름입니다.
이 ‘세계’라는 단어는 영어로 ‘the book of generation’입니다. ‘세대에 관한 책’이라는 말입니다. 앞의 말과 연결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관한 책’이라는 뜻이 됩니다. 아주 멋있는 말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아, 하나님! 당신의 책입니다.’ 하는 외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 구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가 알고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이 말 속에 다 포함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관한 책이라면 그 책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아 그렇다. 이것이 인류 최고의 책인데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영어로 볼 때, 이와 똑같은 표현이 창세기에도 있습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5:1)
이 역시 킹 제임스 성경에는 ‘아담의 세대에 관한 책(the book of the generations of Ada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들이 죽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의 책’이라고 되어 있고, 구약 성경에는 ‘아담의 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인류 역사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흘러왔는지, 이 두 책의 흐름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를 따지기 전에, 또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의 족보를 따지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보면, 인간 육신의 겉모양으로 흐르고 있는 역사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를 탄생시키고 육체를 이어 준 사람으로서 ‘아담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인간 역사 속에 예수라는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함으로써 ‘예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분이 모든 인류를 자기 이름 하에 예속시켜서, 처절한 괴로움과 외로움, 슬픔 등 모든 불행의 조건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옮겨 주시려고 이 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저 두 눈으로 따라가며 별 생각 없이 읽기만 한다면, 이 성경은 딱딱하고 어려운 한 권의 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아주 귀한 책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하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한 씨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자손’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씨(seed)’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5) 고 그 씨가 받을 땅까지 약속해 놓았습니다. 유대 민족의 역사 속에 주어진 그 땅은 이 지구에서 가장 가치 있는 땅이라고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현재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넓은 지역입니다. (창 15:18 참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유대인들에게는 땅에 대한 이런 약속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로부터 거의 4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원주민과의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넓이 정도의 작은 땅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구약 성경에 기록된 약속을 알기 때문에 천지를 지으신 창조자께서 이 지구를 만드셨을 뿐 아니라 이만한 땅을 그들에게 약속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일하는 종들도 많았고, 양 떼와 소 떼 등 기르는 가축들도 많았습니다. 그 집에서 길러지고 훈련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창 14:14 참조)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자식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늙고 그의 아내도 늙었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자 그들은 근심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삶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다메섹에서 데려온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한 아브라함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준 약속이 아니고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살펴볼 때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 외로운 사람이었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세기 13:14-17)
하나님께서는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야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참으로 귀하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과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의 집안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스스로 자기 생활의 주도권을 잡고,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적인 요소가 있는 롯이 아브라함의 곁에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고 하신 지시를 따라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고생을 하면서 먼 곳까지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만을 지목하여 이 큰 축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동서남북을 두루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 하나가 그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네 자손’ 곧 ‘씨’에게 보이는 땅을 영원히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씨가 누구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낳은 이삭입니까? “영원히 이르리라”고 한 자손이 이삭이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이삭의 아들 야곱이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신 이 자손은 바로 마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중한 것입니다.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전 인류의 통치자로서 세계를 통치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잘못 생각하면 ‘이것이 어떻게 예수라는 한 씨를 가리키는 말이겠는가,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자손이 있었는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 부합하는 기독교인들이나 설교자들 중에도 성경에 나오는 이런 약속들의 참뜻을 무시해 버리고 잘못된 해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4) 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참으로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이론에 빠지지 않도록 성경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수없이 많고, 자신 또한 틀림없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라디아서 3:16)
‘네 자손’이라는 말은 여럿을 가리키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실 땅을 약속하실 때도 여러 사람을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정통한 사도 바울은 정확하게 한 사람,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후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왕이 된 사람들도 있었고, 왕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을 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씨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곁길로 나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삭이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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