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2009. 12. 29. 강연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17, 21)
저는 얼마 전에 제가 머무는 곳 뒷산에 올라가 하루 종일 공기가 좋은 곳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평소와는 몸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산에 오르기 전날, 저는 네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구름이 없고 맑았습니다. 일행과 오늘은 피부가 조금 타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숲속에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숲으로 들판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산에 가기 전에 마신 밀크티 외에는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금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풀이 있는지, 어떤 꽃이 있는지, 어떤 동물들이 다니는지 계속 살피며 걷는데,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일할 때는 자동차 매연을 맡고 돌아다니면 음식을 잘 먹었어도 힘들었는데, 그날은 하루 종일 걸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괜찮았던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찬송가를 자주 부르는 성격은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 앞에서 찬송가를 불러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하루 종일 들판을 다니면서 계속해서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큰 바위 밑 샘 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주 손으로 덮으시네 (찬송가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무거운 카메라를 몇 대씩 둘러메고 내내 굶으면서, 마른 땅이 아니라서 발은 푹푹 빠지고 가시가 옷에 박히는 땅을 걸으면서, 혼자서 조용하게 그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저는 찬송가의 가사를 생각하기 전에 곡조나 가락에 취해서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설교자가 성경을 가지고 전도를 한다면, 찬양대는 노래로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찬송가 한 곡을 부르더라도 그 가사가 사람들의 귀에 박히도록 불러야 합니다. 그날 저는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진짜 제대로 된 찬송을 가르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또 이런 찬송가도 생각났습니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그러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제가 있던 곳부터 그늘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편 들판에는 아직 햇빛이 비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차를 타고 양지바른 들판으로 이동해 풍광을 바라보았습니다. 태양 빛에 노랗게 비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찬송가 308장) 하는 찬송가도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들판의 한가운데 서서 바라보니 뻘건 해가 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반대 방향에는 하얀 달이 떠 있었습니다. 한쪽 하늘에서는 빨갛게 노을이 지는데 달은 점점 더 밝아졌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고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질 때까지 저는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제 몸 상태를 두고 생각해 보면 그런 날은 정말 많이 지쳐야 하는데,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하루 종일 햇빛을 많이 받아서 배고프고 피곤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얼굴이 탈까봐 너무 조심했었구나, 몸에 좋은 것들을 너무 해 주지 않았구나, 자주 햇빛을 보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첫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실 때 빛이 있었고, 그것이 운동력으로 나타나 천하 만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빛과 물이 만나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면, 내 세포 하나하나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서 그것을 분해해서 연료로 사용해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우리 몸속에도 물이 꽉 차 있는데 이런 원리로, 햇빛을 많이 받았을 때 피곤한 것을 덜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천지가 만들어진 내용을 생각하며, 나라는 한 인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햇빛 아래 있는 동안 저는 생각을 놓을 시간이 전혀 없었고, 계속 몸을 움직였습니다. 크게 어떤 춤을 춘다거나 체조를 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움직이지 않던 마디들을 움직여 주었고 평소 잘 쬐지 않던 햇빛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력은 평소보다 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우리가 알게 된다고 했는데, (롬 1:20 참조) 보여질 뿐만 아니라 느껴지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만 생각해도 참으로 오묘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루 동안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그때까지 읽어 왔던 많은 성경들, 지금까지 불러 온 많은 찬송들을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의 창조물 아래에서 한번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생각들을 한 번씩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아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듣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말씀과 하나님이라는 분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창조물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속에 있는 나를 꾸미려는 생각, 무언가로 나를 자꾸 덮으려는 생각을 지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자연 가운데 설 때마다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을 때, 제 마음속에서는 “오래 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찬송가 248장) 하는 찬송가가 솔솔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 옛날 마르고 건조한 땅을 걷고 또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인물들이 살았던 위대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사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역할사사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사사 시대를 장식한 멋진 사사들이 등장하는데, 중간에도 제일 끝에도 ‘그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7:6, 21:25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거쳐서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난 뒤,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아 서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약 300년 정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은 왕이 없으므로 자기들 좋을 대로 행하며 살았습니다.
사사기부터 룻기, 사무엘상 17장까지의 내용들을 역사적인 순서대로 생각해 보면,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좋을 대로 행했던 사사 시대에도 유다 족속 야곱 집안의 이야기가 성경에 계속 이어지는데, 바로 룻기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왕이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했습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왕이 필요했고 예수라는 분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 전체에 나타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의 대장정을 우리는 사사기와 룻기라는 짧은 기록을 통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룻기에는 룻이라는 이방 여인이 유다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장식하는 후면에는, 메시야가 탄생되기 위해 유다 집안이 어떻게 보호받고 어떻게 열두 지파의 우두머리 역할을 해 왔는가 하는 내용이 깔려 있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와 그 속에서 흘러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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