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서를 읽으면서 3회, 누가복음 2:39-52, 2000. 12. 16. 강연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39-52)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마태복음 2장에는 예수께서 탄생하신 후 애굽에 내려갔다가 자라서 어린아이로 갈릴리 나사렛에 돌아와 살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누가복음 2장 뒷부분에 기록된 한 대목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공부하다 보면 마가, 누가, 요한복음까지 다 살펴보게 됩니다. 빠진 부분들, 또 달리 설명된 부분들이 보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장 41절부터 52절에는 마태복음 2장과 3장 사이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장해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세례 요한이 먼저 활동하고 있었는데, 세례 요한의 활동이 시작되기도 전의 내용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먼저 읽어 보겠습니다.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39-40)
이 말씀에 나오는 ‘아기’는 ‘어린아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시는 힘이 아들 예수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라고 했는데, 몸은 다 자랐는데 정신 연령이 어린 사람이 있습니다. 몸은 늙었는데 마음은 좋게 말하면 여리고 나쁘게 말하면 아직 덜 성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이는 어린데 정신은 너무 조숙해서 젊은데도 노인네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아이가 자라면서 지혜가 충족했다는 것은 몸과 정신이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전체를 다 읽어도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이 단 한 군데의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일반적인 위인들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에 대단했다는 자랑을 상당히 늘어놓는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어린 시절에 하신 말씀은 성경에 이 기록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외경 중에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외경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참고 문헌은 될지 모르지만, 거기에 기록된 예수의 인품이나 성격이 성경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외경은 성경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 성령의 지혜로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외경을 성경으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읽기에 앞서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누가복음 2:41-50)
이 내용은 예수님의 소년 시절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의 기록도 없고, 대단한 표현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높일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어린 시절에도 작은 부분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기준, 사람들이 말하는 도덕이나 윤리에 비추어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나 태도를 보았을 때, 예수께서 어떠한 분이시기에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당돌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아들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은 여기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도덕을 따지거나 윤리를 찾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의 말이 마음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다만 51절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하여, 요셉과 마리아에게 육신적으로 순종하면서 그 가정 돌보는 일을 받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룻길을 갔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예수를 찾으러 갔습니다.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얼마나 남편에게 미안하고 송구했겠습니까. 요셉이 직접 낳은 아들이었다면 요셉이 먼저 나서서 부지런히 찾았겠지만, 여기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를 찾는 일에 직접 나섰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아들 예수를 만나자마자 조금 나무라듯이 말을 했습니다.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이때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하고 남편까지 포함해서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로서 아이의 아버지를 먼저 내세우며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했습니다. 이 가정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이 아닌 어머니만의 아들이고, 아버지에게는 그 아들이 의붓아들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때 마리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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