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 2010. 1. 3 강연영원한 언약의 피에 결정되어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서 13:20-21)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교제를 가져왔고,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부분들을 성경 말씀을 통해 정확하게 구별해 왔습니다. 또한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영원한 언약의 피’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함께 교제를 이루어 나가고 그 속에서 많은 싸움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각자 마음속에 얻은 구원, 우리가 교제를 가지면서 지키고 수호하려고 하는 영혼 구원이 과연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말 알고 계십니까? 지금까지 많은 말씀을 들어 왔겠지만 과연 성경 말씀들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히브리서 13장은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셨다는 사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영원한 제사와 영원한 언약의 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몸속에 가지고 계셨던 영원한 언약의 피가 내 마음속에서 내 것이 되었다면, 생명의 법칙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이 내 마음속에 어느 날 정확하게 한 번 심겼다면, 그 사실은 바뀔 수도 없고 번복할 수도 없고 이후에 다른 어떤 것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아 가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우리가 말씀을 통해 거듭난 사실 자체를 송두리째 뒤집어엎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심긴 것이 얼마나 강력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5절부터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누가복음 22:15-21)
이 말씀을 억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내용인지 눈여겨볼 필요는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잔을 나누실 때 하신 말씀들을 자세히 보면 여러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 (26:28) 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말씀과 율법에 나타나 있고 증거하고 있는 대로 레위 제사장들은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율법에 속한 것이 아니라, 율법이 기다리고 증거하던 메시야의 피를 죄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인간을 위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이고, 그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에 변화를 받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새 언약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닙니다. 새 언약도 구약이 증거하던 언약입니다. 예수의 몸을 통해 이루어진 사실은 흐트러질 수도 없고 두 조각이 날 수도 없습니다. 그분의 핏속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실 때 새로 만들어진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도 없었고 전혀 계획도 없었는데 역사가 진행되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 새 언약을 하나 세워야겠다.’ 해서 세우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새 언약’에 대해 증거하기를 “영원한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거듭났다, 성경 말씀을 통해 거듭났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영원한 언약의 피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는 다른 것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경험해야 하고, 한 번 더 깨달아야 하고,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둥 엉뚱한 교리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어 주신 엄청난 구원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구원받고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1장을 보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31:31-37)
이 말씀 가운데 31절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약성경에서는 분명히 새로운 것이 하나 일어날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히브리서 8:4-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유대 민족이 율법을 가지고 율법에 준해서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 즉 이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세상,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그곳은 전도서가 말하고 있는 “해 아래” (1:3), 곧 인간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고 있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고 지금 예수께서 올라가 계신 엄청난 세상입니다. 이곳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나 영적으로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곳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곳입니다. 현재 우리가 갈 수 없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이 땅에 있는 것의 원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법칙을 가지고 계셨고, 세상에서 사랑의 짝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계획이 그 마음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님은 그것을 실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인간이 죄를 범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이끌어내셨습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 속에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실 것이 결정 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속에 있었던 그 모든 엄청난 생명의 법칙과 비밀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율법을 동원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율법이 주어진 이후에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피는 영원 속에 있던 엄청난 생명의 비밀을 이 세상에 퍼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언약의 피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몸속에 가지고 계셨던 그 엄청난 언약의 피가 내 마음속에서 흔들리고 시시한 것이 되어 버리면, 이것 말고 무언가를 더 깨달아야 하고 무언가를 또 해야 된다며,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다고 하신 말씀처럼 (잠 26:11 참조)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히 10:10 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 산상에서 이루어 주신 언약의 피를 통해서 모두가 동일한 믿음을 받습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엡 4:5-6) 하는 말씀이, 먼저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이루어지고, 교회를 통해서 그 비밀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교리와 교훈 자체가 흔들려 버립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의 씨앗이 내 마음속에 떨어지는 순간, 단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속에 감추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다 보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는데, 그럼 율법 이전에 무엇이 있었던가?’ 하는 식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6) 하는 말씀을 보면 성경 전체가 이야기하고 있는 어떤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에 나타나는 가인과 아벨의 모습을 보면, 아벨은 하나님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자기가 농사지은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기뻐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아우인 아벨을 쳐 죽인 것은, 구약이 증거하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그 엄청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형제들,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일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벨이 죽은 뒤 하나님께서는 아벨 대신 아담에게 아담과 똑같이 생긴 아들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셋입니다.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 5:3)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벨의 모습이라면,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서 불러일으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셋의 모습이고,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제자들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했을 때, 예수께서는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8-9 참조) 성경에 기록되고 증거된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셔서 핍박을 받은 후 새롭게 태어나신, 영원한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신 그분의 모습이 바로, 아담과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셋이라는 아들 속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엄청난 힘입니다.
이 이야기의 이전으로 더 가 보겠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서 입히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 먹음과 동시에 죄인으로 전락해 버렸는데, 그러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짐승을 잡으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간 역사 속에 맨 처음 있었던 제사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피가 드러나지 않고 단지 가죽옷이라고만 되어 있지만, 이 사건 속에는 피가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엄청난 비밀이며, 그 비밀은 역사를 통해 서서히 드러납니다.
시간이 지나고, 노아가 제사를 지냈습니다. 창 8장 참조 그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간 아브라함으로부터 그 씨가 퍼질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창 22장) 참조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에 출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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