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덕/서울
요즘 여러 일들을 겪으며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아 다시 점검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다. 구원 간증을 써달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북적대는 집안에서 자라다 보니 항상 내 것은 내가 챙기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맏며느리로 시집을 오셔서 시집 식구들을 뒷바라지하느라 늘 힘겨워 하셨다. 우리 집에는 앞을 못 보시는 할머니, 고모 한 명, 작은 아버지 네 명이 계셨다. 게다가 어머니는 아들을 낳으려고 딸만 내리 다섯을 낳으셨고 그중 나는 넷째 딸로 태어났다. 5.16 혁명의 여파로 경찰직에서 퇴직하신 아버지는 가정 경제에 보탬을 주지 못하셨고 가세는 점점 기울어졌다. 어머니는 행상을 하시며 집안을 돌보셨고, 나는 늘 어머님의 신세타령과 한숨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4살 때 무역사가 되어 돈을 벌려는 마음에 명지대학교 무역학과에 진학했는데 그곳에서 김임길 형제를 알게 되었다. 그분의 결혼식에 반주를 해 주게 된 것을 계기로 집에 초대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그분의 직장 동료였던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나는 어머니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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