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 | 서울
1972년 6월 23일, 그날만 생각하면 지금도 자꾸 눈물이 난다. 너무나 절묘하고 아찔하게 내 인생이 바뀐 날이다.
나는 충청도 두메산골 친할머니 집에서 여동생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부모님이 딸만 내리 셋을 낳다가 드디어 귀한 아들을 얻어 서울로 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11살이 되었을 때에야 서울로 올라가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그때부터 춥고 배고픈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성격은 여간해서는 자극을 잘 받지 않는 무심한 성격으로 아주 낙천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순하고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누구에게 화를 내거나 싸운 기억이 없다. 내 이상이 효녀 심청처럼 사는 것이었을 정도였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유교 사상, 양반 가문 이야기를 즐겨 하셨다. 그러면서 가끔 점쟁이나 이름 풀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고 혹독한 서울 생활을 견디시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은 원래 ‘순애’였는데 중학교 때부터 ‘양미’라고 불렸고 2년쯤 지나서는 ‘지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딸에게는 너무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가 화난 얼굴로 들어오셨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고향 친구들과 점을 보러 갔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하셨는데, 나 때문이었다. 내 사주팔자가 너무 안 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또 바꾸셨는데 그것이 ‘호정’이었다. 이 이름은 3년 이상 매일 부르지 않으면 내가 20세에 죽거나 비참하게 된다고 했다. 그것도 남자에게 놀래서 죽는다는데, 한마디 덧붙여 동서남북에서 남자가 나를 노린다고도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은 비상 사태였다. 집 여기저기에 부적을 붙였고, 나를 지켜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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