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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4월 22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5:12-21)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그야말로 공짜입니다. 즉 거저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대가를 너무 크게 치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는 거저 받는 것이지만,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감나무 아래에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식으로는 안 됩니다. 금을 찾는 것같이, 은을 찾는 것같이, 보화를 찾는 것같이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에 가는 열심 있는 자세가 종교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는 것에 대해서도 그런 열심 못지않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신경 써야 합니다.     이 로마서에는 쉬운 듯하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이 로마서가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로마서가 얼마나 중요한 책인지를 확실히 인정하고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구절은 아주 중요한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라는 말씀을 보면서 으레 ‘그 한 사람은 아담이지 뭐.’라고만 생각하고 그칩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에는 인류의 긴 역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상당히 많은 문제를 안고 흘러왔습니다. 그 문제점 중 하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전개되어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다른 나라에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는지, 얼마의 세금을 거두어 사용하면 적대국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등의 연구가 심각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또 그러한 움직임과는 반대로 군비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와 국가 간 합의를 통해 서로 얼마의 군비를 축소하자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중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축소하기로 한 금액보다 덜 축소했다가 후에 발각된 나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눈감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내 먹고사는 일에만 신경 쓰고 가정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같은 배에 타고 있습니다. 지구가 역사의 수레바퀴 속을 돌며 한번씩 진통을 겪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 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를 사람들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확실한 것을 잡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에서는 멀리 떠나서 찾고 있습니다. 천문학,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등 별 것을 다 연구합니다. 그러다 인류학계에서는 더 연구할 것이 없으니 원숭이를 연구하며 원숭이에게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더욱 더 그런 연구들을 하고 있습니다. 혹 동물원의 원숭이가 어떻게 하다가 연필 사용하는 법을 배워서 무언가를 그렸다 하면 인류의 조상으로 연결하여 언론에서는 야단이 납니다. 사람들은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말씀에는 최초의 인간에서부터 지금 우리까지의 온 인류가 다 해당됩니다. 앞으로 태어날 사람도 해당됩니다. 이 역사가 언제까지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이 말씀에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것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동물들에게는 해당이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뒤 그 범죄의 결과로, 아담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자기 아들이 죽는 비참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이는, 그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 사건이 확대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세계 전쟁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부모와 자식이 원수가 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세상 말입니다. 인류는 이렇게 범죄의 결과를 반복해서 계속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하는 이 말 속의 “세상”은 한국이라는 세상이나 미국이라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고 사는,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에 사는 인간의 두뇌 속에 죄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아도, 현미경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들은 보입니다. 이 성경은 죄가 들어온 원인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원죄의 결과 모든 인간이 원죄를 타고나도록 문이 열려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사망이 왔는데 거기에 모든 질병과 고통도 따라붙어 버렸고 그 결과 인간은 별별 고통을 다 겪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은 죄와 관계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는 인간의 피를 타고 유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벧전 1:18)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시대에 저지르는 죄악들은 조상들이 이미 지은 죄를 그대로 흉내 내는 것뿐입니다. 죄의 결과 인간은 죽음이라는 것과 결탁되어 버렸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죄악을 피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죄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어느 부분에 속했던 사람 중 누구라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신 이 말씀 속에 자신은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호적에 이름이 적혔든 적히지 않았든지, 도시에 살았든 산중에 살았든 강물 위에 살았든지, 어느 나라에 살았든지 모든 인류는 이 말씀에 포함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르러 있는 이 죽음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것을 부인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죽음에 대해 심상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을 날은 아직 멀었겠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잘되어 갈 때 자신의 죽음이 언제일지 한번씩 생각해 보기도 하고, 또 죽음이 내 가까운 사람들의 곁에 있지는 않은가, 죽음을 대비한 영혼의 채비는 갖추고 사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남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고 자신과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 어떻게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내가 죽은 뒤 세상은 어떻게 될까? 우리 가족들은 그대로 있을까? 죽은 후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이 가끔 제게 어떤 충격을 주었고 어떤 빛 같은 것이 한번씩 제 마음을 스치곤 했습니다. 자라면서 어렵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기도해 보기도 했는데, 답은 없었지만 종교적인 후련함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이란 것을 잊고 멋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어떤 정답을 가지고 제 삶을 판정했던 것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죽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른 종교인들이 써 놓은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염라대왕이 실수로 출석부에서 이름을 빠뜨리는 바람에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산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진짜 답을 얻기까지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를 착잡하게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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