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숙 | 부산
남편의 금주를 위해 교회를 찾고저는 지금 재혼한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전남편과는 사이좋은 부부였으나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제난에 시달리다 보니 그 좋던 사람도 점점 변해갔습니다.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고 술에 빠져 살던 남편은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먼저 집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은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군에 입대했고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작은 아들은 기숙사를 제공해 주는 기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전세금도 모두 없어져 버린 집에서 도망치듯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게는 차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 차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공사현장에 식당 밥을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광고를 보고 찾아가 일을 시작했는데 한 달 월급이 60만원이었습니다. 기름 값 30만원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지만 일단 시작한 일이라 의무감으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하기로 했습니다.
그 공사 현장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당시 남편은 아내 없이 아들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관심을 표했지만 저는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때라 세상 자체가 싫었고 누구의 관심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도 싫다고 했지만 매일 제가 사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혼자 힘들게 살던 터라 제게 잘해 주니 조금씩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마음이 갔습니다. 엄마 없이 커온 그 사람의 아들도 불쌍했고 그의 어머니도 굉장히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편과 재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처음 두 달 동안은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잘 대해주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변해 심한 욕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언어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술만 마시면 아내에게 욕을 하고 때리면서도 술이 깨면 잘못했다고 비는 남편들을 보며 저런 남자가 제일 싫다고 생각했는데, 때리지는 않았지만 제 남편이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헤어지자고 했지만 술이 깬 남편은 너무 미안해하며 절 붙잡았습니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되는데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마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어머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잘 안다. 네가 떠나도 원망은 않겠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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