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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 빌을 보내며

    지난 7월 갑작스러운 비보가 있었다. 미주 지역에서 전도에 힘을 쓰시며, 젊은이들에게는 신앙생활을 독려하시고 꾸준히 교제 속에서  순종하며 함께하셨던 형제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고인을 추억하며 여러 분들이 글을 보내와 글소리에 싣는다.     순종하던 그를 떠올리며     김홍식 | 미국두 달만 있으면 정부의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65세가 되는데 그것도 채우지 못한 채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주님의 품으로 간 빌을 추모하며 이 글을 씁니다.     32년 전 그를 처음 알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각인되어 있는 그의 인상은 줏대 없는 사람, 쓸개도 없는 사람,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펼칠 줄도 모르고 언제나 시키는 대로 ‘예’밖에 할 줄 모르는 과잉 충성으로 꽉 채워져 있는 바보였습니다. 아무리 비난하고 욕을 퍼 부어도 호박에 침 주기요, 두들겨 맞고 또 맞아도 되치는 일이 없이 맞기만 하는 미련한 샌드백 같아서 오히려 때리는 내가 재미가 없고 지쳐서 그만 두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야단만 쳤는데 수고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 것을, 보내고 나니 후회스럽고 아쉬움이 많습니다. 몸이 아팠으면 엄살도 피우고 꾀도 좀 부릴 것이지 아픈 것도 숨긴 채 ‘전도’라 하면 자기 몸을 아끼지도 않고 온몸을 던지더니 갑작스레 잠들었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틀 후에 장례식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여유 없는 일정이었는데도 세계 도처에서 미주지역 성경탐구모임에 버금가는 숫자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것을 보고는, 바보스럽던 그 사람의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겼을까 의아했습니다. 유명한 사람도 아니요 눈도장을 찍어야 할 위치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요 똑똑하거나 말에 능한 위인도 아니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분명 ‘인사치레’로 온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비행기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먼 거리에 흩어져 있는데도 평소 자기 지역 모임에 모이는 숫자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왔다고 합니다. 10년, 20년간이나 볼 수 없었던 얼굴들도 장례식에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숫자로도 그러하거니와 진정으로 애도하는 참석자들의 진심 어린 분위기를 보며, 도대체 그의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을까를 또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그의 전 생애가 미련스럽게 보일 정도로 성경의 원칙에만 충실했던 삶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원칙’이란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신 대로의 ‘순종’의 삶일 것입니다. 교제 가운데 진행되는 방식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비록 불만과 불평을 가지고 있더라도 양심 깊숙한 곳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이란 ‘순종’만이어야 함을,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있음을 나의 양심은 동의하고 있기에, 바보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렇게만 살아왔던 그에 대한 꾸밈없는 존경과 경애심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처음 교제 가운데 이 복음이 전해지던 때부터, 미국인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았으니 언젠가는 미국에도 참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모임의 어른께서는 늘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당시 영어 교사였던 그를 미국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가 계획했던 장래의 모든 인생 설계들을 접고는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미시간 주 앤아버(Ann Arbor)라는 곳은 유명한 대학이 있는 도시로, 인구 10만 명 중 5만 명이 학생이고 나머지 인구의 대부분도 학생의 가족이거나 학교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용하고 아름다운 교육 도시입니다. 당시 한국인 유학생이 150명 정도 있었는데 그 도시에 한인교회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요일이면 장로교, 안식교, 천주교 할 것 없이 모든 교파의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예배도 드리고 야유회를 하는 등 친목회도 갖곤 했습니다. 유학생, 교수,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때 그 교회의 집사로, 또 성가 대장으로 주로 의사와 유학생들과 많은 접촉을 가지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주 지역에 구원받은 이들로는 김혜숙 자매와 김영선 자매, 간호원으로 얼마 전 이민 와서 미시시피에 살고 있는 하현순 자매, 그리고 LA에 살고 있는 김보업 자매 정도였습니다. 하현순 자매와 김혜숙 자매는 서로 안면도 없던 사이였지만 모임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 전화로나마 교제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것이 좋겠다는 한국 모임의 의논에 따라 하 자매가 미시간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디트로이트 근교 어느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던 하현순 자매는 처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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