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3월 24일 강연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3월 24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4)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 아래 가두신 이유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19-31)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표준새번역판 한국어 성경에는 9절에 나오는 ‘우리’를 ‘우리 유대인’이라고 아예 명시해 놓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우리’는 복음을 아는 사람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확실히 믿는 사람들로서의 ‘우리’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특히 로마서 3장 19절에 나타난 ‘우리’는 로마서 전체 흐름을 보았을 때 이방인의 죄와 유대인의 죄를 논하면서 ‘우리’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1-24) 는 말을 했습니다. 진흙을 구워서 그릇을 만드는 주인이 자기 뜻대로 그릇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글을 인용해서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사 29:16, 사 45:9, 사 64:8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 하나님의 교회가 등장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이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에서 ‘우리’는 유대인으로서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교회를 말합니다.
그래서 특히 로마서에 나타난 ‘우리’라는 말은 신중히 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 ‘우리’는 유대인 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과 이방인 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합해서 일컬은 말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믿고 복음을 맡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19절의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은 ‘교회가 알거니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까지 많은 세월을 보내온, 세상에 믿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그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때의 초대 교회 입장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3:19)
“우리가 알거니와”, 교회, 즉 믿는 성도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그때 교회가 보는 율법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어떤 입장에 있었는지를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율법을 어떤 강력한 빛으로 봅시다. 그 빛이 비추면 그 빛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그림자가 집니다. 그와 같이 율법으로 인간을 보면 죄 없다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글자라도 볼록렌즈로 보면 크게 보이듯이 우리가 죄 없다 해도 율법으로 파악해 보면 죄가 하나 하나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세균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씩 알아갔습니다. 산파가 아기를 받을 때 손을 깨끗이 씻고 모든 기구를 끓인 물에 씻은 후 아이를 받으면, 막 태어난 아이가 죽는 일도 줄어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렌즈 같은 것들이 발명되면서 균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나의 렌즈로는 발견되지 않던 세균이 두세 개를 겹쳐 보니 발견되기도 하고 다른 종류의 렌즈로 더 확대하여 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도구가 없을 때 사람들은 균이 어디 있느냐 했었지만, 렌즈를 통해 균을 보면서 사람들은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천체 망원경 같은 것을 만들어 굉장히 먼 거리에 있는 별도 발견하고, 전파를 우주로 보내 위성을 움직여서 별의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무시하지 못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볼 방법이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17:9-10)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주어져 있는데 양심은 어떤 렌즈보다 강합니다. 어두운 구석에 있는 것을 어두움 속에서는 볼 수 없지만 빛이 비취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심이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잠 20:27)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양심 속에 자기를 살필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살피도록 하셨습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 2:12, 14-15) 는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을 도외시한 인간일지라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훗날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율법이 주어진 이들은 율법을 살피며 자신이 어떤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율법이 인간에게 주어진 목적입니다. 이렇게 율법이 주어진 목적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율법을 다른 방법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어졌는데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합니다. 그 노력 자체가 훗날 하나님께 도전하는 교만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모든 인생을 율법으로 비춰볼 때 율법이라는 그 강렬한 빛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성경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데 그들의 모든 입을 다 막았다, 즉 율법 앞에 섰을 때 어느 누구도 입을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죄 없습니다’라든지, ‘내가 왜 죄가 있어?’라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온 세상이 하나님께 정죄를 당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목욕을 깨끗이 하고 칫솔질을 열심히 했다 해도 우리 몸에는 균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피부나 머리, 입 안 등 어디든지 균이 있게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도 렌즈로 보면 다 보입니다. 현대 과학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입을 벌려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두 다 죄 아래 가두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율법으로 인해 어떤 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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