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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 광야에서 50년,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첫번째

홍승연 (방송작가)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칠 것 같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지문아.     ‘강’이라는 시인데 참 서늘하고 상쾌해.     나이가 들수록 시가 갖는 압축과 생략이 그리 좋을 수가 없어. 시심을 잃고 사는 게 싫어 자꾸자꾸 시를 읽는다. 내 위기감의 토로가 실은 나로선 절제를 하고 하고 또 하는데도 너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내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나의 위기라는 게 사실 엄청난 건 아닐 터.     늘 집안에 꽃을 조금 놓는 것, 이따금 좋은 공연을 보는 것, 여행을 계획하는 것, 화집을 사들고 기뻐하는 것, 조촐한 음식으로 지기들을 부르는 것, 필요할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 무언가 배우러 다니는 것 등 등 등인데, 이런 건 누구나 꿈꾸는 그런 생활일 거야. 누려봤으니 다행이고 단지 결별하기가 아쉽고, 애석하고, 그리고 또 뭐? 여유에서 나오는 창의력이란 게 있더라고. 그것 땜에 분통이 터지는 거지만.     난 내 체질을 알아. 일년 동안 앓던 남편 보내고, 곧이어 아버지 갈비뼈 11개와 어깨뼈 부서지고 잇달아 딸아이 골반뼈 으스러져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시절에 이리저리 앰뷸런스 타고 다니는 와중에도 나는 ‘장난감과 향수’란 샹송을 늘 생각하고 있었어.     가사 내용인즉, 불치병 걸린 아들이 장난감을 사달라 조르고 젊은 엄만 백화점엘 간 거야. 그 화려함 속에 넋 나간 엄만 그만 향수를 사들고 오고 아이는 죽어가고.     늘 그래.     집안에 먹을 것 하나 없고 겨우 쌀 살 돈만 생겼을 때 난 시장에 가. 그 돈으로 달랑 모과를 사다가 모과 차, 모과 술을 담가. 그러면서 쌀도 뭣도 없는 현실을 이기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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