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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 붉은 대륙에서의 40일

이병희, 김미나, 최정은, 최한창     2003년 12월 24일, 중국 실습생들은 모두 실습 전의 마음도 다지고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실습생들은 우선 이번 실습을 가게 된 계기와 목적을 이야기 하고, 그 외에 중국어 회화 공부, 중국어 찬송가 연습, 중국 모임과 관련된 비디오 자료 시청, 중국의 형제자매들에게 발표할 스크랩 공부와 자료 만들기 등의 준비를 했다. 또 혹시나 중국 모임 식구들이 한국모임 소식에 대하여 물을 때를 대비해, 2003년 한 해 동안 모임에서 있었던 활동들을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정리하는 시간도 가졌다.     28일 아침, 드디어 중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일주일간 합숙해 왔던 다른 팀과도 작별을 해야만 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들을 보며 다시 만났을 때엔 서로의 마음에 새로운 힘을 품어 돌아오기를 바랐고, 40일 가량의 중국 방문 중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음에 새겨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주님께서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상해 이야기 - 이병희     상해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특별한 감상이나 설렘 같은 것은 없었고, 단지 잘 듣고 잘 보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목적이라 생각했다. 일회성에 그치는 실습이 아니라 갔다 온 이후에도 내 생활에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도 분명 전해 주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1시간 정도 하늘을 날았을 즈음 창밖 너머로 눈길을 돌렸을 때엔드넓은 대륙의 자락, 상해 땅이 내려다 보였다. 곧 비행기가 착륙하였고, 우리 일행이 짐을 끌고 출구를 벗어나왔을 때 소 형제님께서 마중 나와 계셨다. 낯선 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이라서 반가웠던 것인지, 이곳에서도 또 다른 형제를 만났기 때문에 반가웠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반가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상해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난 후부터 우리 실습 팀은 현장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박 형제님의 안내로 다시 한 번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일들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이전에 활동하셨던 대학생회 이야기라든지, 실습 이야기들을 통해서 교제의 의미와 모임 속에서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바른 마음가짐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셔서, 좋은 교제의 시간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곧장 팀을 나누어서 작업에 참여하였다. 오후 6시까지만 일을 했는데도, 단순작업 특유의 피곤함이 밀려왔다. 2주간에 걸쳐 일을 하면서 모든 생활을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그곳의 생활을 체험하게 된 것이 참 좋은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실습생들이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 속에서 복 받으며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 그것이 귀한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철없음에 대하여.     이곳에서는 매주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묵고 있는 숙소에서 모임을 갖는다. 모임 장소에 갔더니 50, 60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 형제님과 방 형제님이 찬송가를 가르쳐 주셨는데, 매주 모일 때마다 두 곡씩 배운다고 들었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았지만, 힘차게 찬송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노래를 못 부른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큰소리로 찬송을 부르지 않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찬송은 음률의 아름다움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찬송이 끝나고 나서 상해 식구들과 함께 성경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의 말씀은 이사야 39장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였는데, 정 형제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 현재 상해 모임이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지나가는 말씀으로 ‘이렇게 어렵다 해도, 할 일은 해야지. 복음은 전해야 할 것이 아니냐.’ 하셨는데, 마땅히 마음에 각인해야 할 말씀인 것 같다. 조금만 문제가 되어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복음 전하는 것에 대하여 무관심했던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 공부 시간이 끝나면 모두 바삐 흩어졌다. 중국 식구들이 한국 식구들처럼 자연스럽게 모여 교제를 나눈다거나 하는 풍경은 보기 힘들었다. 중국에 오기 전에 나는 아마 너무나도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구원만 받으면 바로 한국처럼 교제 속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한국 모임에서 자라온 나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말씀과 교제의 풍족함이 거저 주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40년 넘게 이어져 온 모임 역사 속에서 앞서 가셨던, 그리고 지금도 앞서 가시는 많은 형제자매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져 온 돌탑 위에서 편안하게 교제와 말씀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숨을 쉬고 있음에도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의 식구들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들 때문에 구원받은 식구들과의 교제는 쉽지 않았다. 처음엔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러한 사정을 알고 가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사정을 본 우리들이 귀국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곳에서도 비디오 전도 테이프를 통해 일주일에 3, 4명 정도가 구원받는다고 하셨다. 이들은 주로 이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숙소나 가정으로 돌아가서 주위분들에게 한 권유나 간증을 통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청하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일하는 중에도 틈틈이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자주 교제를 나누었는데,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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