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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 참되신 하나님의 의

‘로마서를 읽으면서’ - 2000년 3월 18일 강연     이 소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2000년 3월 18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3-4)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1-18)     성경을 읽다 보면 내용에 따라 어떤 말씀은 개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있고, 로마서에 기록된 말씀대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서 3장 1절부터 18절까지의 내용에는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가 다 해당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장과 2장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인 죄성에 대해서 말했고 또 죄로 인해 일어나는 내적 싸움, 즉 율법 있는 사람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되고 율법 없는 이방인이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자기 양심이 증거가 된다, 양심이 서로 변명하고 혹은 송사한다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2장 후반에서는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이 율법을 선하게 여기고 율법을 좋게 생각하면서도 죄를 범한다면 율법 그 자체가 유대인의 자부심을 살리겠느냐는 말을 합니다. 이방인과 구별되는 예식,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외형적으로 유대인인 것이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 로마서 2장 후반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롬 2:28-29) 하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이 말 때문에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아, 유대인이 버림 받았기 때문에 이방인인 우리가 이제 영적 유대인이 되었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지며 유대인을 멸시하고 너무나 많이 박해했습니다. 몇 년 전 교황이 과거에 가톨릭이 이단 심문을 하거나 많은 사람들을 처단했던 문제에 대해 사과했는데, 그 속에는 유대인을 죽인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신교나 구교를 막론하고 외형적으로 흘러오고 있는 기독교 역사 속에는 유대인을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대인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유대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신앙생활 속에 ‘영적 유대인’이라는 말을 만들어 적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감을 한층 더 강하게 하였고, 유대인 멸시의 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처참할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바로 이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한 마디 말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것은 거듭난 유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할례를 받고 율법의 선한 것을 지킨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확실하게 중생(重生)하지 않았으면, 내주하는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면 유대인의 장점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표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영혼의 거듭남을 말했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확실히 믿었으면 이것은 영적 유대인이다’라는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 중에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을 살펴보아도, 유대인 아닌 이방인이 거듭났다고 해서 ‘영적 유대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거듭나면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교회의 일원은 유대인과도 다르고, 이방인과도 다릅니다. 유대인은 이스라엘인이라고 하거나 혹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이방인으로서 거듭난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이삭의 자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되어 있습니다. (갈 4:28 참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자식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에 의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고, 육신을 따라, 종의 몸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약속의 씨로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과 같이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이삭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했고, 예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8:32-36) 이 영원한 나라의 복음에 동참할 사람은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해 보아야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참으로 자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스마엘과 같은 종의 위치에 있는 후손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직접 약속하신 약속의 후손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두 여인이 나타납니다. 한 여인은 종인 하갈이고 또 한 여인은 자유하는 여자로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입니다. 사라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만큼 기력이 떨어진 상태였는데도 아들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 아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습니다. 바로 이삭입니다.   그리고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 21:12) 는 말씀에 따라 이삭에게서 또 두 아들이 났습니다. 에서와 야곱입니다. 맏아들은 에서였지만 제해지고 참으로 축복을 받은 아들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그 전통을 이어서 말합니다.   그 다음 야곱의 아들 가운데 유다가 태어났습니다. 그 유다는 훗날 유대 땅에 정착한 유다 지파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다시 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는데, 훗날 이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남쪽에 있는 나라는 유다라고 부르고 열 지파가 모인 북쪽에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패망하여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고, 훗날 유다도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민족이 포로로 잡혀가서 살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부터 그들은 유대인 혹은 이스라엘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일지라도 성경을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이라고 자부하며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삭의 자손이 되었다거나 야곱의 자손이 되었거나 유다의 자손이 된 적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라는 것에 교회를 억지로 끌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일원이 되면 자신이 ‘영적 유대인’이라고 착각하며 자부합니다. 자신들이 영적 유대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대인을 보는 눈도 곱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적으로도 혈통적으로도 절대 유대인이 아니고 이스라엘인도 아니며 야곱의 자손도 아니고 이삭의 자손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2장을 읽다가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라는 말 때문에, ‘우리는 믿으니 이면적 유대인이 아니냐, 영적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원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거듭난 사람이라면 다 들어갑니다.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방인으로서 거듭난 우리가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 6:16) 라는 말씀 때문에 ‘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바로 우리 영적 이스라엘이구나, 영적 유대인이구나’ 하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 유대인도 아니고 영적 이스라엘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관망하기만 했습니다. 따라다니면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보셨습니다. 하나는 잃어버린 양들, 잃어버린 죄인들로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6) 고 하신대로 하나님 말씀 앞에 낮아지고, 하나님 말씀의 부름을 입을 수 있을 만큼 비어 있고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유대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도하고 거만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자주 경고하셨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삼가 바리새인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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