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 2004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을 대비하여 독일에 대해 알아봅시다.
“독일인국은 백옥으로 성을 쌓은 나라이다.(獨互人國白玉城)”
이 글은 조선시대 이수광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지봉유설(1614)’에 남긴 독일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이로부터 30여 년 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는 독일인 신부 샬(Schall von Bell. J. A)로부터 서양의 문물을 전수받았으나 귀국 후 독살됨으로써 그가 전수받은 서양 문물에 관한 사실들은 세상에 감추어졌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저 멀리 유럽에 있는 나라 독일은 아시아 동쪽 끝에 있는 은자의 나라 한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독일과 한국간의 우호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선에 서구 열강의 침입 바람이 거세게 불던 1889년, 프로이센 제국(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의 친동생 하인리히(Prince Heinrich)가 조선을 방문했을 때, 조선에서는 ‘홀로 독(獨)’ 대신 ‘덕(德)’이 있는 나라라는 표현으로 독일을 ‘덕국’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해 9월에는 서울에 관립덕어학교(官立德語學校)를 세우기도 했다.
또한 6.25전쟁 이후 1960, 70년대를 지나면서 독일(당시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처럼 독일과 한국은 오래 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오랜 역사를 가진 독일 땅에도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교제하는 독일인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루터역 성경
가톨릭이 국교였던 독일에 새로운 신앙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가로 널리 알려진 마틴 루터로부터 기원한다. 당시 유럽 각 국가의 군주들은 성직 임명권 등 각종 권리를 둘러싸고 로마 교황과 대립하고 있었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이룩하고 있던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은 왕의 세력이 매우 약해서, 로마 교황으로부터 많은 정치적 간섭과 경제적 수탈을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독일에서 태어난 루터는 엄격한 부모 밑에서 가톨릭 신앙을 배우고 자랐다. 그는 나름대로 기도, 궁핍, 금욕 등의 고행을 진지하게 실천하면서 남보다 열심히 수련을 쌓았고, 외적으로 누구보다도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훗날 ‘매일의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에서 자신의 양심은 용서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만을 느끼고 마실 뿐’이었다고 회고한다. 루터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를 수 없어 절망하던 중, 성경을 통해 참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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