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인과 함께 호화로이 산 솔로몬의 삶에는 솔로몬 자신의 꾀도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 지혜로운 사람이 많은 여인들과 상대해서 같이 살았지만, 자기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여인들에게서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부와 명예, 지위, 그 모든 것으로 봐서 그는 아무 여인이나 데리고 산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부귀에 맞는 빼어난 여자들하고만 살았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그저 이런 왕이 보낸 예쁘장한 딸, 저런 왕이 보낸 곱상한 딸, 이런 수준이 아니라, 어느 나라 왕궁에서든 최고의 교육을 받고 뽑혀 모든 부를 안고 왔을 것입니다. 그런 여인들에게서도 못 찾았던 이것이 무엇일까요? 그러나 일천 남자 중에서는 하나를 찾았다고 합니다. 남녀를 구별하는 이 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성을 하위로 돌리고 남성을 높이는 소리일까요?
하지만 이 전도서는 그렇게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자기 지위가 이러했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왜 살아가야 되는지 참된 인생의 목적이 뭔가 하는 것을 넌지시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후세대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남기는 이 사람의 솔직한 글이야말로 이 지구 역사가 지속되는 한 누구에게든지 알려져야 될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전도서 1:2-5)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전도서 9:11)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도서 9:3)
이런 글들을 읽다 보면, 무언가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도서를 읽고 허무주의에 빠져서 허무하게 살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를 읽으면, 허무주의에 빠져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허무주의자가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전도서는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follow me)’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이 사람이 삶의 초점’이라고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솔로몬입니다. 나름대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 “나는 예전에 돈도 많이 벌어 봤고 모든 것을 다 가졌었다, 멋진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는 늙어서 힘이 없다.” 이런 말을 해도 솔로몬이란 사람의 표현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이러한 솔로몬이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없었을 것이다’가 아니라 정말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솔로몬은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하는 말로 정말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솔로몬의 지혜입니다. 이것은 자기 아버지에 비해서 천 배나 더 강하게 산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인류의 조상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도 하다’고 한것 때문에 인류는 이상한 운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조상은 바로 아담입니다.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하는 말은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솔로몬이라는 사나이가 자기 인생의 허무한 데에서 먼 훗날 나타날 심판자이신 둘째 아담,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을 말합니다.
아담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지식 만능시대에 사람의 근본 지혜를 뒤엎는 엉뚱한 주장들이 세상을 휩쓸어, 성경에 기록된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뒤집어버렸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처음 조상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자손을 번식시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원숭이에게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일천 여인 중에서 없었다는 것은 인간이 유혹받을 수 있고 거기에 빠져 모든 것을 다 추구해도, 거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무엇을 하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마음을 다 빼앗길 정도로 매혹적인 천 명의 여자와 함께 살았는데, 그 많은 여인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들에게는 허무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처와 첩들로서는 진리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유혹되어 살아온 자신이 힘이 빠져 늙었을 때, 여인들이 가져온 모든 우상들이 자기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성
하나님은 솔로몬과 같은 인생을 에덴에 만드신 장본인이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하는 그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그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예레미야 23:23-24)
하나님의 영원성은 우주 전체에 차고도 남는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건물도 저절로 지어지지는 않습니다. 틀림없이 지은 설계자가 있고, 그의 머릿속에 방, 화장실, 식당 등 건물 전체의 구조가 짜여져 있었습니다. 그는 건물의 안전성은 물론 문짝 모양도 미리 구상해 두었을 것입니다. 그 설계도를 보고 시공자가 지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 층을 안심하고 오르내립니다.
하나의 건물도 그럴진대 하물며 우주는 어떻겠습니까? 우주는 가도 가도, 위로 올라가도, 아래로 내려가도, 동서남북으로 가도, 앞뒤로 가도 끝이 없습니다. 이런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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