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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 소망을 가지고 전진하는 삶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 2006년 3월 11일     이 소리는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2006년 3월 11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립보서 3:20-21)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과 같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등장합니다. 요나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 하신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다가 풍랑을 겪습니다. 배에 탄 선원들과 승객들은 풍랑의 원인을 찾다가, 제비를 뽑아 요나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니느웨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이 배에 올라 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생업이 무엇이냐, 고국이 어디냐 하며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요나는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다 밝히게 됩니다. (욘 1장 참조)     이러한 요나와는 달리, 바울이라는 사람은 철저히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로부터의 핍박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요나가 그랬던 것처럼 바울도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의 위치에 있다가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유대 정통을 따르는 사람이 볼 때 바울은 형편없는 배신자입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이 스스로 배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꾸어 놓은 것이기에, 바뀐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밝혔습니다. (빌 3:5-12 참조)   유대 정통을 따르는 사람들은 끝까지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애를 먹였고, 그를 감옥에 보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핍박을 받는 것이 자신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정통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메시야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또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자신은 예전에 새롭게 된 무리에 대해 공격자요, 박해자요, 핍박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그 입장에서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빌 3:20 참조) 그것은 사도 바울의 일관된 사상이며 절대 변하지 않는 신앙이며 주장입니다.   그는 로마가 세계를 통치하고 있던 시절, 당대 최고 국가인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율법에 준해서 사는 일에는 스스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 3:6) 고 할 정도로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것 저런 것 다 두고 그중에서 새롭게 된 사람들을 핍박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자신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도 그랬듯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예로서 예나 지금이나 절대로 예루살렘을 못 잊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그 나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앉게 되었으면서도 늘 예루살렘을 그리워했습니다. 유대인은 세계 어디에 흩어져 있어도 예루살렘을 잊지 못합니다. 시편 137편의 저자도 예루살렘에 대한 시를 쓰면서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5절) 라고 할 정도로, 예루살렘을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태도를 조금 달리 합니다.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누어 모든 유대인이 소망으로 삼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구약 성경에 나타난 여인, 아브라함의 처의 여종으로 있던 하갈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본처와 같은 자유하는 위치에 있는 여자로 설명합니다. (갈 4:25-26 참조) 바울은 역사 속에 나타났고 지난 2천 년간 기독교인들에게 소망의 장소가 된 곳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소개하면서, 자신이 그 곳에 예속되어 있고 모든 믿는 사람들도 함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갈 4:31 참조) 성경 66권 중 어느 책에서도 사도 바울만큼 새 예루살렘에 대해 정확하게 발표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새 예루살렘에서” (찬송가 223장) 하고 찬송합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해 있고 자신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늘에 속한 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발표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지상에 발을 딛고 살고 있고 그들의 신앙의 자세는 천태만상입니다. 단지 기독교인 행세를 할 뿐인 사람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대교에 심취해 있었던 바울은 율법사로서, 그 유대인의 눈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다니는 유대인 이단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한 몫을 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말하는 교회나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들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설명하신 본질적인 참된 진리를 깨닫고 새롭게 태어나 변화된 사람들을 괄시했고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성경에도 나타납니다만 빛과 어두움에 대한 구별은 뚜렷합니다. 낮과 밤이 뚜렷하고 빛과 어두움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선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빛에 속했는지 어두움에 속했는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살아가는 길은 완전한 빛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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