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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 2006년 2월 18일 강연   이 소리는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2006년 2월 18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     (빌립보서 3:8-9)   찬송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옛날 찬송가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시온성에 사는 처녀들이여 사랑하시는 내 주를빈들에서나 그 장막 안에서 만나 뵈인 일 없는가  (합동찬송가 64장)     “시온성에 사는 처녀”라는 가사를 들으면 시온성,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사는 아리따운 처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한 편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의 말씀으로, 바울 자신은 남들을 비판하는 데는 무능하지만 어떤 위치에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권면한다는 내용입니다.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고린도후서 11:1-9)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설교만 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기만 했던 설교자들 중에, 바울이 전하는 순수하고 깨끗한 복음에서 이탈되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 자신은 그런 사람에 비해 양심껏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이 편지는 고린도 교회에 있는 아가씨들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 속에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 어그러지지 않고 깨끗한, 다른 복음이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정결한 처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몸을 담고 살지만 우리 영혼은 하나님 것으로 간수하신 바 되어 있습니다.   또 “시온성에 사는 처녀들” 이라고 한 시온성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다른 찬송가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이 수고 언제 그치고 나 거기 가리까  (찬송가 225장)     갈라디아서에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4:26)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에베소서에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6)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 영혼을 취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도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20 참조)   “시온 성에 사는 처녀들”은 “빈들에서나 그 장막 안에서 만나 뵈인 일 있는가”라는 찬송가 가사대로 몸은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섞여 지내더라도, 영혼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계시네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찬송가 427장)     그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 성전 삼고 주께서 계시네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찬송가 200장)     우리 육체는 세상에 섞여 살고 있지만, 찬송을 하다보면 우리 영혼은 어디에서든지 예수님을 대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광야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받는 삶을 살면서도 불평을 하며 하나님을 떠난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다가 성경을 통해 예수를 확실히 믿게 되었는데도 이 육체가 세상에 있기에 많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을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 세상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찬양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찬양은 세상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산골이나 넓은 들이 있는 곳에서 자란 추억을 지닌 사람들은 그러한 풍경에 대한 가사의 노래를 들으면 그 상황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그런 노래를 들어도 추억을 지닌 사람들만큼 마음이 끌리지는 않게 마련입니다.     노래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찬송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나를 감화시킨 일들이 있었을 때, 주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생길 때 한층 더 깊이 주님을 이해하게 되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곡에 도취되지 말고 가사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하신 말씀이 있는데, 우리가 세상과 싸워 이기면서 살아가면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찬송가 397장) 하는 찬송도 더 값지고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게 됩니다. 성경을 대하거나 찬송을 대할 때, 복음을 사랑한 사람들이 마음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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