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3 - 2005년 9월 3일 강연
이 강연은 ‘태초에’ 2005년 9월 3일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사도행전 17:24-25)
태초에 저 하늘에서 있었던 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세기 1:1-19)
우리는 이 창세기 내용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능력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0절)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창세기 내용을 보면서 그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위대한 창조주다 하는 생각 정도에만 그치실 것입니까? 우리는 그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계획을 통해서 우리 인간에게 어떤 것을 베풀어 주려고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라는 것이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하나님의 능력일까요? 단지 우리같이 하찮은 인간들과 비교되는 하나님의 신성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나 이 생태계 속에서 우리가 느끼고 또 매일 접하는 어떤 창조의 힘 같은 그 모든 것까지 포함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이라는 숫자는 쉽게 생각하고 넘길 숫자가 아닙니다. 이 셋째 날의 창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창조했다’ 라는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시편이나 에스겔서,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정해 놓은 어떤 장소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상상하지만 성경은 구체적으로 어느 방향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간에 다시고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26:7 참조) 북쪽 어딘가에 사람의 힘으로는 관측할 수 없고 다다를 수 없는 어떤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욥기 뒷부분에는 북쪽에서 어떠한 금빛이 나온다는, 광채를 발하는 어떤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37:22 참조) 그리고 에스겔서 1장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습이 북쪽에서부터 어떤 빛의 모습으로 선지자 에스겔의 눈앞에 펼쳐지고, 그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모습이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과 연결된 내용이 시편 48편입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1-2절)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이렇게 정확하게 방향은 북쪽, 이름은 시온 산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온 산이라면 예루살렘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예루살렘에 고지가 높은 곳이 있는데 그곳을 시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저 강연자는 큰 왕의 성,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이 땅에 있는 장소가 아닌, 이 땅에서 완전히 벗어난 어느 한 곳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하는가?’ 라고 궁금해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 28장에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이라는 장소가 나옵니다. (13절 참조) ‘하나님의 동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을 읽다 보면 동편 에덴에 낙원을 지으셨다는, 하늘에 있는 어떤 창조물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서 이 땅에 만든 어느 한 지역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8절 참조)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 5:34-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당시의 예루살렘에는 유대 민족의 왕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적대 관계에 있던 에돔 족속, 야곱의 형님이었던 에서의 족속에게서 나온 헤롯이 이스라엘에서 분봉왕으로 치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마라. 그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성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바로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어떤 나라,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탈취할 수 없는 완벽한 나라를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에 비추어서 시편 48편을 보면,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 이라는 말씀은 인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어떤 한 지역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 대하여 ‘내가 예수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을 안다. 그 사람은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끌려 올라간 적이 있다. 거기서 사람이 도무지 듣지 못할 어떤 엄청난 소리를 들었다’ 라는 표현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고후 12:2-4 참조) 그곳은 우리가 볼 수도, 갈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는 다른 어떤 완벽한 세상이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그 창조물 중에는 천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천사, 루시퍼라고 하는 계명성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탐을 냈다는 이야기가 이사야 14장에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14절) 고 했습니다.
시편 11편 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17:24) 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여호와께서 성전에 계신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상반되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는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라고, 하나님의 보좌가 분명히 하늘에 존재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모습을 본 계명성의 마음에 ‘그와 비기리라’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을 선지자 에스겔은 에스겔서 28장에서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5절) 하고, 어떤 죄의 씨앗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12) 하는, 그 계명성이 땅에 찍힌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이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정죄를 하는 내용입니다. (벧후 3:5 참조)
창조 첫째 날, 둘째 날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날은 어떻습니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이 물 위를 거닐고 계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 곳에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영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빛을 어두움으로부터 분리해 놓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어와는 표현이 조금 다릅니다.
이 첫째 날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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