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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 한 치의 오차 없이 내 인생을 끌어 주신 하나님

  김미영 | 대구 종교생활의 시작저는 평범한 가정의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아주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유년 시절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했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며 곧잘 한다는 소리도 들으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음악 실기 시험을 치던 달이면 각 반마다 불려 다니며 본보기로 노래를 불렀고, 전교생이 등교하는 시간에는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방송실에서 동요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무언가 모를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이나 명절 전날의 흥분과 기대감도 없어졌습니다. 가정 시간에 수예를 배우고, 가사 실습을 하고, 예쁜 편지지나 편지봉투를 모으고, 마음에 있는 친구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격이 조금 차분해졌던 것 같습니다.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외로움과 허전함에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스스로 찾아가 영세를 받으신 어머니로 인해 저와 남동생 둘이 연이어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 종교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도 이런저런 의문이 많았는데, 그런 의문을 수녀님께 질문하면 어머니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엄마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처럼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답하기에 후에는 의문이 있어도 그냥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세를 받았고, 일요일 미사에 빠지면 그 다음 주에 해야 할 고해성사가 너무 싫어 주일 아침이면 성당부터 다녀왔습니다. 그 후에야 다른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땐 성당부터 다녀오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면서도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친구가 성당에서는 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지, 왜 똑같은 사람인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는지를 물었을 때는 대답을 확실하게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일 주일 강론 중에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하는 말씀 구절을 들며, 옛날의 사도 직분이 지금의 신부가 하는 역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성당은 하나로 통일된 미사 예식을 하는 큰집인데, 자기네들 욕심 때문에 타락한 신부(당시 성당에선 마틴 루터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가 세운 여러 파로 갈라진 작은 집인 교회가 무얼 안다고?’ 하는 우월성이 제게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였습니다. 철없는 저는 당연히 성악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로 알아보니 교수 사사도 받아야 하고, 예술 대학은 특히 돈이 많이 들어 혼자 버시는 아버지 월급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기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아련한 미련은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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