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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이용준 | 고성 불교에 열심을 내었던 시절태백산 기슭,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정월 초하룻날 새벽 5시경이었습니다.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머리에는 두꺼운 벙거지 모자를 쓰고 목에는 목도리를 칭칭 감고 두터운 털 잠바를 입고, 허연 입김을 내뱉는 얼굴만 밖으로 내놓은 채 두 손은 합장하고 두 눈을 감은 상태로 앞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의존하며 한 발짝 한 발짝, 리듬에 맞춰 탑을 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일명 탑돌이를 하는 것이지요. 그 예닐곱 명의 사람 중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유난히 유약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교실에서 친구와 장난치다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켜 실명 위기까지 갔으며 2개월여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죽음의 공포와 나라는 존재의 유약함과 능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일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커오면서 저는 그 존재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그 추운 날에도 탑돌이를 하는 등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렇게 결론짓는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아주 컸습니다. 저희 집안은 지독히 유교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더하여 부처를 숭배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꿈속에서 동네 삼각산 서쪽에 떠 있는 부처상을 가슴에 안은 후로 더욱더 부처 숭배에 목숨을 걸었던 집안이었습니다. 물질적인 것과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 육신적인 복을 부처가 모두 이루어 주는 줄 알았습니다. 제 동생의 이름을 돈이 흥하라고 돈흥이라고, 절의 주지승이 아명으로 지어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른이 되어 회사에 취직을 하였고 회사의 안전관리자로 안전업무를 맡고 있으면서 사고가 없게 해 달라며 주일마다 절을 찾았고 시주에도 열심을 내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오로지 아들들의 출세를 위해 시주에 열심이셨습니다. 부친께서 갑자기 쓰러져 3년간 병원 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곳에 가시도록 더욱더 부처에 빠져 열심을 내셨습니다. 주지승이 기도하며 섬광을 받는 장면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신주 모시듯 했지요.     사실일 수밖에 없는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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