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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 ‘하나님’이라는 대답 하나로 얻은 구원

  권오인 | 수원 어린 시절에 시작된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경기도 이천의 작고 조용한 한 마을. 내 고향은 서울에서 멀지는 않았으나 아주 벽촌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우리 마을에 몰려와서 잘 지내다 갔을 정도로 오지였다는 말을, 어머니께로부터 듣기도 했다.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그저 고요함과 평온함 속의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삶의 무게를 놓고 고민이라고는 없어 보였고, 해 보며 아침을 맞고 달 보며 저녁을 맞는, 그저 그날그날을 무사 평온하게 사는 것만이 최선의 길인 양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무리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던 1963년쯤의 어느 날,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과 부딪쳤다. 할아버지는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분이었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어머니는 그런 힘겨움에 세상을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셨던 것 같다. 그날은 어머니의 그러한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진 날이었으리라.   그때 내 나이가 일곱이나 여덟 정도였을까.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마당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 고무줄놀이를 하며 놀던 중이었다. 우리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속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어머니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늘 물을 길러 다니셨다. 이런 어머니가 측은했던 아버지는 아침마다 물지게로 물을 길어와 항아리에 붓곤 하셨다. 그렇게 길어온 물로 우리 오남매와 할아버지를 비롯한 여덟 가족이 씻고, 밥도 해 먹었다.   어머니는 그날도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 가려는 중이셨다. 홀시아버지의 고된 시집살이에 적응을 못하시던 어머니는 언제나 우울해 보였고 웃음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내겐 그런 모습의 어머니가 더 익숙했다. 어쩌다 어머니가 밝은 얼굴을 하면 가족들은 해바라기 꽃이 핀 것처럼 너도 나도 덩달아 웃음을 만들곤 했었다. 그런 상황에 어머니에게서 다정한 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는 놀고 있는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하셨다.   “언니, 오빠 말도 잘 듣고 동생들과도 싸우지 말고 잘 놀고 있어. 알았지? 엄마 물 떠서 금방 올게.”   나는 그렇게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어머니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냥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말없이 물을 뜨러 가셨고, 우리들에게 그런 어머니의 일상은 익숙했으므로 궁금해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이런 새삼스런 다정함은 어린 나로 하여금 어머니를 쫓아가고 싶을 만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따라 가겠다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추운데 뭐 하러 오니? 금방 올 건데.” 하면서, 나를 따라오지 못하게 단호한 어조로 자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리밭 사이로 사라지셨다. 방금 전의 부드러운 말과는 다른 어머니의 단호한 어조에 나는 따라 나서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이른 봄이라 날씨는 아직 추웠고, 겨울을 견딘 보리이삭들만 파릇파릇 보리밭 이랑에서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이 흘렀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는 놀면서도 자꾸 어머니가 돌아올 곳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다. 불안과 걱정이 몰려왔지만 절대 따라오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을 어기면 안 될 것 같아 그 옹달샘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산에서 땔나무를 한 짐 지고 들어오셨다.   나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면서 어머니가 물을 뜨러 갔는데 안 온다고 말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버지는 더 묻지도 않으시고 정신없이 보리밭 이랑을 달리셨다. 어린 나도 아버지를 따라 뛰었고, 내 뒤를 할아버지도 따라 오셨다. 옹달샘에는 어머니가 이고 간 물동이와 똬리, 바가지만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땔감을 마련하던 오리나무숲으로 다시 뛰어가셨다. 나도 엉엉 울면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를 따라 갔다. 어머니를 찾아 나선 것이다.   마침 산속의 나무들은 아직 나뭇잎이 돋기 전이어서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제법 멀리까지 보였다. 그렇다 해도, 아버지는 무슨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 넓고 험한 산 어디쯤까지 갔는데 정말 그곳에서 축 늘어져 있는 어머니를 찾은 것이다. 어머니는, 큰 오리나무가지에 목을 매단 채 정신을 잃고 계셨다. 얼마나 무섭고 슬펐는지. 이 불행했던 아픈 기억은 오래도록 나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버지가 새끼줄을 끊고 어머니를 꼭 끌어 안으셨다. 나는 무서움과 슬픔으로 엉엉 울면서 “엄마 괜찮아, 아버지?” 하고 물었다. “그래 엄만 괜찮다. 어서 내려가자.” 하시며 어머니를 등에 업는 아버지의 얼굴도 눈물로 젖어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그것보다도 어른도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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