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필 | 하와이
죄의 고통에서 은혜를 알게 되다저는 유교 사상을 지니신 부친과 불교를 믿으시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정직하게 사는 것이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는 관심도 없었고 열심히 공부하여 출세하는 것과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선하게 사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습니다. 학창시절에나 사회인이 된 후에도 시간이 있으면 늘 독서를 했습니다. 영웅전, 세계문학전집 등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철학 서적을 탐독했지요. 이렇게 여러 종류의 서적에서 얻은 지식은 제 인생관을 형성했습니다. 즉 사람이란 자기 노력에 따라 명예와 재물을 얻고, 불행한 사람들을 돕고 법을 잘 지키며 살다가 늙고 병들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죽어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조들도 다 그렇게 살다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결혼을 하고 2남 1녀의 자녀도 보았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학자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모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다 보니 만학에 공부하기도 힘들었고, 박사 학위를 받아도 세 자녀의 학비 조달은 힘들 것 같아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자퇴를 하였습니다.
그 후 친구의 소개로 조그마한 가게 하나를 얻어 소매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사에 문외한이었던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한국에 있을 때 사람들을 많이 접하는 은행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그 경험을 살려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시작한 첫 1, 2년은 종업원 없이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며 갖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3, 4년이 지나니 여윳돈이 조금 생겨 점원을 고용하게 되었고 5, 6년이 지나자 기반이 잡혀 명품 핸드백, 의류, 보석까지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되니 부촌에 있는 저택에서 살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도 빗나가지 않고 잘 자라 주어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넉넉한, 이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한 삶을 만끽하며 살았지요.
사람이란 명예와 직위가 높아지면 목이 곧아지고 재물이 풍부해지면 세상 재미에 빠지는 법입니다. 저 역시 세상 재미에 빠져 인생을 즐기면서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 여인의 희생으로 죄를 깨닫게 되고이렇게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는데도 가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한숨을 쉴 때마다 아내는 “왜 그렇게 한숨을 쉬세요?” 하고 물어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글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네.” 라고 무심한 척 답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하나님은 몰랐지만 죄의식으로 괴로움을 받는 양심병 환자였습니다.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이 나이에 내 과거의 비밀을 밝힌들 무슨 일이 있으랴 믿고 십여 년 묵은 긴 한숨의 사연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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