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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 내 영혼의 닻

채영옥 | 서울 사춘기는 빨리도 왔다. 그렇게 헌신적이신 어머니의 모습이 이제는 덜 세련된, 시골 아낙의 모습으로, 근엄한 아버지의 모습은 쓸데없는 권위주의로 설득력 없는 교훈을 반복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세상에는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도 없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넓고 깊은 어두운 심연의 사유 속에 한없이 빠져들었다가 후다닥 현실로 돌아와 학교, 책, 선생님, 동급생, 가족이라는 이리저리 얽힌 짐스런 존재들 속에 소속되어 내면과 일치하지 않는 웃음을 흘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뱉으며, 부유하는 영혼의 극단적인 모습을 내면에 간직하고 드러내지 않은 채, 나는 그렇게 십대를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 삶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이렇게 표리부동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말이냐? 자기 것이라는 것도 없이,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도 못한 채, 남의 장단에 맞추어 그럭저럭 한평생 살아가란 말이냐? 주어진 환경과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지리적인 위치에서 숙명일 수밖에 없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목적의식도 없이 교과서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섭렵하려 애쓰며, 절대적인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인, 회색의 세계에서 무난하게 살아남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인가? 나는 내면으로 절규하며 고교 시절로 접어들었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했다. 어머님, 아버님을 생각해서였다. 일곱 번째로 태어난 자식이 늙어 가시는 분들에게 한숨의 주름을 더 얹어 드리는 것은 가혹한 짓이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삶의 근원이 무엇인지만 생각하며 일상의 삶을 팽개쳐 버리기에는 내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아 적당히 살 수만은 없었다. 삶의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내 앞에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싫고, 남에게 뒤처지는 것도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알랴? 혹 존재하는 삶의 의미를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잡아보고 싶은 희망 사항이었다.   우리 집은 유난히 마을에서 넓었다. 언덕배기 뒤뜰에는 늘 과실수와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이 있었고, 앞뜰에도 아버님이 많은 꽃들을 심어 놓아 늘 꽃이 피어 있었다. 집 바로 뒤 야트막한 뒷동산에는 소나무, 참나무, 감나무, 밤나무, 그리고 봄이 되면 보랏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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