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8월 1일 저녁 강연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사야 61:10
참것의 그림자우리는 시계를 본 후에야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시계는 원래 있는 시간을 알아보기 쉽도록 표시해 놓은 것입니다. 시계의 시침 등이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시계를 만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3-5) 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을 칭하시기 전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말씀처럼 시간이라는 것이 한 바퀴를 뱅 돌아 지나고, “첫째 날이니라”는 말씀대로 첫째 날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한번 볼까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22:5) 는 말씀과 함께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22:1-2) 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다시 밤이 없고 햇빛이 쓸데없다고 하셨는데 “달마다” 실과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잖아요? 또 다른 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시 104:19)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사람이 알고 있는 ‘하루’라는 시간, ‘한 달’이라는 시간, 그 시간들은 우리가 계산하기 쉽게 하루는 24시간, 한 달은 30일이라고 정해 놓은 것일 뿐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이 있는데, 그것을 단지 인간이 자신이 아는 방법으로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계산하여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한 달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한 달과 시간의 길이는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시간을 30일이다, 31일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가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는 부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저는 자주 느낍니다. 찬송가 중에 “거룩한 성” 새 찬송가 645장 이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참 멋있는 찬송가입니다.
나 어젯밤에 잘 때 한 꿈을 꾸었네그 옛날 예루살렘 성의 곁에 섰더니 허다한 아이들이 그 묘한 소리로주 찬미하는 소리 참 청아하도다
‘그 옛날 예루살렘’ 마치 마태복음 22장, 23장, 24장, 25장 부분을 읽는 듯합니다.
그 꿈이 다시 변하여 이 세상 다 가고 그 땅을 내가 보니 그 유리바다와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또 한번 예루살렘이 등장하지요. 여기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은 진짜 예루살렘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2),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요 16:7) 는 말씀도 하셨고, 요한계시록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2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21:12)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진짜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는 골로새서에서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1:20) 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땅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의 중재자 역할을 바로 그리스도의 피가 했다는 것입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 3:17) 는 말씀대로, 우리 인류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땅과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저주 받은 하나님의 이 창조물을 하늘에 있는 것들과 평화롭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내용입니다.
저는 골로새서 1장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마구 뜁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모습과 마지막 날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모습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땅에 있는 것들과 화평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진짜 것과 그림자, 참 것과 모형을 서로 화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피로 말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저 위에 있는 것의 모형입니다. 태양은, 우리를 비추고 계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그림자입니다. 저 달빛도 태양빛을 받아 어두움을 비추어 주는, 이 역사 속에 나타나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걸으며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곳마다 세웠던 성막도 하늘에 있는 진짜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히 8:5 참조)
그들이 성전을 세운 예루살렘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엄청난 새 예루살렘의 그림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산과 바다, 강, 나무들 등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원래 하나님의 세상에 속해 있는 완벽한 창조물들의 그림자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림자로서, 하나님의 모형으로서 무엇을 창조하셨습니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를 받아 하나님의 그림자로서 이 세상에서 한평생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보고 나의 참 모습인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서 3:11)
성경을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사람은 어렴풋이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또 죽음 저편에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궁금해 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러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들 중에서도 복음을 아는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스스로를 증거하고 계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스스로를 증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쾌한 해답을 예고하는 구약의 이야기들앞으로 공부할 제사장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사장 역시 무언가의 그림자입니다. 히브리서에는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5: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0:11)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제사장의 모습이 출애굽기 뒷부분에 발표됩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첫 번째 돌판이 깨어지고 레위 지파의 운명이 바뀌는 것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레위 지파는 제사장을 섬겼고 또 각 지파 속에 흩어져 섞여 살면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또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낼 때 많은 시무를 맡았다는 이야기들이 민수기에 자주 나타납니다. (1장, 3장, 18장, 35장 참조) 그런데 첫 번째 율법의 돌판이 깨어지고 두 번째 것이 법궤 안에 들어간 것처럼, 열두 지파를 구성하는 지파들의 운명도 첫 번째 돌판이 깨어지고 두 번째 돌판이 주어진 시기에 달라집니다. 즉 열두 지파 중 한 지파인 레위 지파는 흩어지게 되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정식으로 열두 지파에 속하게 되는 사건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첫 번째 돌판이 주어졌을 때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그 돌판이 깨어지고 두 번째 돌판이 주어진 후에야 성막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2장에 나타난, 금송아지에 제사를 지내다가 모세에게 꾸지람을 듣고 모세의 편에 선 레위 지파에 의해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은 단순하게 세상 사람들에게 ‘우상숭배하지 말라’ 라는 도덕적인 개념만을 말하기 위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성경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뛰놀며 춤춘 행동은 과연 무엇을 뜻했던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을 나와도 상관있다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이스라엘 민족이 범한 잘못이라고만 받아들일 것인가. 여기에서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그 어깨에 짊어진 성막은 훗날 솔로몬에 의해 지어지는 성전의 초본입니다. 성막이 있은 다음에 성전이 지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을 받으신 다음에, 후에 얻으실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 순서대로 두 번 지어집니다. 참 이상하지요?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이 먼저 있은 후에 돌판이 깨어지고 나서 성막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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