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순이의 신앙일지
이승은 | 서울
어느 가을. 일요일 오후 지구대 사무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순 21. 순 21. 중리마을 왕릉길 3호 우물에 사람이 거꾸로 들어가 있다는 신고. 119 구급대도 보냈으니 순 21호 신속히 출동하여 상황 보고하도록! 아울러 순 22, 23호도 지원 바람.”
이때 순찰차 21호에 배정되어 있던 저와 최 경장님은, 관내에 있는 어느 도예가의 작업실에서 한가로이 녹차를 얻어 마시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우물에 빠졌다니!’ 깜짝 놀란 우리는 급히 순찰차에 올라 타 경보음을 울리면서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이 순경아~ 중리마을 우물에 거꾸로 들어갔다카면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퍼뜩 가야겠다. 밟아라, 밟아!”
사뭇 긴장한 최 경장님의 말투에 저도 덩달아 비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관내가 워낙 넓어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도 10분이나 걸려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119 구급대가 먼저 와 있었고, 구급대원 한 분이 이미 우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청바지를 입은 어떤 남자가 머리를 우물 바닥 얕은 물속에 박은 채 고꾸라져 있었습니다.“로프 좀 던져 주소!”
우물 안에 들어간 구급대원이 로프를 받아들고 그 남자의 몸에 칭칭 감았습니다. 다른 대원 두 명이 우물 위에서 로프에 묶인 남자를 ‘영차, 영차’ 하고 끌어당기자 거꾸로 선 다리가 먼저 보이더니 마지막엔 파랗게 질린 남자의 얼굴이 올라왔습니다. 대원들이 인공호흡을 하고 맥박이 뛰는지 확인해 보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 순경! 가족들 인적사항 파악하고 상황실에 무전보고하거라.”“네!”
유족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과 그 할머니보다는 약간 젊어 보이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이고~아이고~’ 하며 울고 계십니다. 구경 나온 동네 분들에게 누구시냐고 여쭈어 보니, 우물에 빠진 남자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사돈뻘 되시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수첩을 꺼내들고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보시더니, 한 팔로는 제 팔을 잡고 다른 팔로는 당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시면서 오열하십니다.
“아이고~ 순사 아가씨요, 순사 아가씨요!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맨날 천날 물만 보면 뛰어 들어갈라카디만, 인자 우물 앞에 가서 ‘엄마 내 죽는다. 내 죽는다.’ 하고 기어들어가드만.... 내가 그거 들어가는 거를 붙잡는다고 다리를 붙잡고, 죽어도 안 놓으려고 붙잡고, 사돈이 지나가다가 같이 붙잡고 한참을 버티고 그라다가.... 늙은이 둘이가 무신 힘이 있능교. 둘이가 힘이 빠져가 다리를 놓쳐 뿌리가 우리 아가 저래 되었는기라요. 아이고, 순사 아가씨, 내가 손이 이래 되도록 죽을힘으로 붙잡았는데.... 아이고, 우야능교....”
제 팔에 매달려 우시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가죽만 남은 손을 보니, 우물 표면에 긁혀 살갗이 벗겨진 곳에 빨간 피가 송송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 손을 보니 할머니가 말씀하신 상황이 눈에 보이듯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이 되었는지, 저 또한 마음이 무너져 내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기에 그저 할머니의 손을 꼭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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