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연은 1998년 미주 성경탐구모임 중 7월 22일 오후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사도행전 13:29-30)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사도행전 13장 13절부터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부터 예수 때까지의 내용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읽으며 성경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들은 인간의 삶에서 논하는 것들과는 상관없이 창조자 하나님의 순수한 사정, 창조자께서 인간에게 요구하는 원을 알고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인은 한 나라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유대인의 조상, 이스라엘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을 낳기 전에 한 여종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는 다른 곳에서 살게 되었고 이삭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전에 파스칼의 <팡세> 라는 책의 서문을 보았는데, ‘다른 어느 이방신도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내게 몇 년 몇 월 몇 일에 중생의 경험을 갖게 해 주셨다.’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성경을 오랫동안 읽으면서도 많은 의문을 가졌었는데 나중에야 ‘아,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후에 이삭보다 먼저 났던 아들은 다른 곳으로 갑니다. 또 이삭도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먼저 난 형은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되고 동생인 야곱이 그 집의 혈통을 이었습니다. 야곱은 후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를 낳았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열두 형제 중에 유다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유다의 계통을 통해서 예수께서, 유다의 후손들이 사는 유다 땅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의 몸이 탄생될 수 있었던 가정, 그 혈통의 제일 원조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 1:1-2) 하는 그 순서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 민족,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 미리 정하여진 백성, 예정하신 민족을 통해서 전 세계 모든 만민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과 그 순서를 성경에 미리 약속해 놓으셨습니다. 많은 족속, 많은 민족이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먼저 한 민족을 통해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의 후손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고난 속에 살도록 하셨고, 남의 나라인 이집트에서 많은 고역에 시달리는 그들을 모세를 통해서 끌어내어 가나안 땅이라는 현재의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한 편린을 영화화한 사람도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두루마기를 입고 홍해 앞에 서 있는데 바다가 좍 갈라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갈라진 바다 사이를 지나가고, 전차를 타고 뒤쫓아 오던 이집트 군인은 그 물에 덮이는 장면이 나오는, <십계>라는 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나무 그늘만 보고 나무를 다 본 것처럼 착각하면 잘못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성경을 몰랐다면 그것이 다인 줄 생각했겠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여 이스라엘 땅에 가서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요단강을 건너가서’,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하는 찬송가들을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의 모델을 보며 우리도 영적으로 그와 같지 않느냐 하며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택하셨던 유대 민족의 역사를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그들의 역사 속에서 구약이라는 성경이 완성되었습니다.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은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에 돌아올 때까지 4백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미리 약속하신 기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땅에 돌아와 살게 된 이후 자신들의 왕도 정하며 역사를 이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로니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후에 귀환을 했지만, 예수께서 탄생하시기까지 또 4백여 년의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더듬어 보면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한 민족의 역사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유대 민족을 특별히 택하셔서 그들을 채찍질하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자기를 나타내 보이기도 하시고, 선지자들을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긴 역사 속에 있는 인간 삶의 고뇌와 고통, 모든 역경을 함께 겪으며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한 민족의 역사 속에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 오는 동안 인류의 역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글도 발달하고 다른 많은 민족의 언어도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다른 민족들이 성경 말씀을 듣고,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또 인류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행과 불행, 축복과 저주, 이 모든 것이 기록된 성경을 우리가 읽고 더듬어 찾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모르면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잘 키웠다는 것이 자랑입니까? 짐승도 새끼를 낳아 잘 키웁니다. 옷을 잘 차려 입는 것이 자랑입니까? 사람은 때에 맞춰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하지만 짐승들은 한 벌이면 됩니다. 여름이면 털이 빠져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오고 겨울이 되면 기름기가 흘러 따뜻한 털을 입고 다닙니다. 사람이 옷 잘 입었다고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무언가 꾸미려고 애를 쓰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참된 축복과 행복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다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에게 특별한 약속을 주시려고 이 성경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내용인지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두고두고 자랑하는데, 무언가 착각을 해서 일부 유대인들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은 이 사실을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축소해서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향해서 해 놓으신 예정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이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성경을 안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안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위력을 안다면 인간이 어떤 운명에 사로잡혀서 어찌할 수 없이 끌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어디에서, 어떻게 벗을 수 있을까요?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찬송가 455장)
언젠가 연수가 차면 우리는 이 지구라는 버스에서 내려야 합니다. 교통사고나 병으로 일찍 내릴 수도 있고 늦게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한 번은 내립니다. 우리 선조들도 내렸고 부모님들도 내렸습니다.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언젠가 내가 가는 날이 옵니다. 인간 개개인에게 끝나는 날이 찾아오듯이 인류 역사에도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인가 더듬어 찾아 발견해야 할 책임을 갖고 이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이제 사도행전 13장 13절부터 차례대로 보겠습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3-14절)
바보, 버가 등 여러 지명이 나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의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신화 같은 희한한 글들을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에는 어떤 특정한 장소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고, 있었던 일들이 확실한 사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안디옥이라는 곳에 이르러 안식일 날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이때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입니다. 그 전에는 헬라 제국이 이스라엘을 지배했었고 이제 로마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렇게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유대인들은 그 역사의 흐름을 역류하며 다른 나라에 자신들의 율법을 전파하고 동족이 있는 곳마다 안식일에는 회당에 모여 성경을 읽고 외우며 지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출발했던 이 복음은 예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고 하셨던 말씀대로 안디옥이라는 지방에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안식일에 그곳의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사도행전 13:15)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도 표가 납니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도 자기 동족이 있으면, 많은 타민족 중에서도 즉시 알아봅니다. 그런데 바울은 유대 정통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 학자적인 모습을 절대로 변질시키지 않은 차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랍비 같은 모습의 사람이 뒤에 앉아 있으니 회당장들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그들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권할 말이 있거든 한번 해 보시오.’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회당장들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게 권할 말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도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메시지가 들어 있었습니까?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사도행전 13:16)
바울이 앉아 있다가 손을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회당에 앉아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르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하고 단순하게 부탁했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사도행전 13:17)
유대 민족이 출애굽할 때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앞뒤를 호위하시고 그 큰 권능으로 홍해를 가르고 건너게 하셨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사도행전 13:18)
‘광야 생활’, 성경에 시내 반도라고 되어 있는 시나이 반도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쭉 돌면서 그 안에 들어갈 준비를 사십 년 동안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인생의 그림자로 보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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