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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 한번 살펴봅시다 - 2003 성경체험전시회

스크랩 팀
      성경탐구모임 기간 동안 전시되었던 그림들, 조각들, 모형들에 대한 스크랩팀의 설명을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1. 명화관       “돌아온 탕아”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누구지요? 거지처럼 보이는 이 사람은 할아버지 같은 사람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왜 이 아들은 아버지께 안겨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간단히 해 드릴게요.     어떤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상속받을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한 후 그것을 가지고 집을 떠나 멀리 갔어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사랑하는 아들이 쾌락과 세속적인 즐거움을 찾아서 집을 떠날 때 한없이 마음이 아팠겠지요?     집을 떠난 아들은 모든 재산을 허비했어요. 결국 거지가 되었고 그가 살던 나라에 흉년까지 들어 먹을 것도 얻기 힘들게 되었어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황하며 어두움 속에서 살았던 아들에게 남은 것은 가난과 허망함뿐이었겠지요.  (누가복음 19장 참조)     이 아들의 상황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개개인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아요. 모두 나름대로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것을 가져 행복하기를 바라지요. 명예, 돈, 좋은 학벌, 좋은 직업 등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겠지만, 이것들을 원하는 만큼 다 가져도 무언가 더 갖고 싶어 해요. 또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결국 남는 것은 허무함 뿐이지요. 그래서 많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성공 끝에 걷잡을 수 없는 허무함과 절망감에 빠지는 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만약 당신이 아버지를 떠나 거지가 된 이 아들이었다면 아버지께 돌아갔을 것 같나요?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겠지요.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주실까 하는 걱정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결국 이 아들은 자신의 처지를 보고 죄를 뉘우치며 아버지 집에서 하인으로라도 살겠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어요.     그때 아버지는 근심하며 기다리던 아들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 먼저 달려가 사랑으로 안아주셨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떠난 날부터 아들을 용서했던 거예요. 부모의 입장이라면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 아버지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시겠지요? 어떤 잘못을 했든, 어떤 모습이든 그저 빨리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아버지의 마음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 개개인을 기다리시는 분이 있어요. 그분은 하나님이에요. 우리 인간들은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하다가 거지가 된 이 아들과 같지만, 우리들이 잘못을 참으로 뉘우치고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크나큰 사랑으로 우리의 추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실 거예요. 이런 인자하신 하나님께 돌아갔을 때, 우리 개개인은 허무한 세상의 욕심만을 좇던 어둠의 생활에서 빛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지요.     이 빛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햇빛이나 전등불처럼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빛이 아니라, 참 사랑의 따뜻한 빛이에요. 이 참빛은 영원히 빛나는 것이지요. 이 세상 삶의 근심과 두려움이 주는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아버지, 창조주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9)       이 빛이신 분께로 우리 개개인이 마음을 돌릴 때 어두웠던 마음에 비로소 빛이 비취게 되는 것이지요. 이 사랑의 아버지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바니타스”     이 그림은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바니타스’라는 그림입니다. ‘바니타스’란 허영을 뜻하는 라틴어인데, 그 시대 귀족들이 수집하던 사치품과 해골 등을 그려 놓음으로써 인생의 헛됨을 보여주는 정물화입니다. 이 그림에는 조개껍질, 크로노미터*, 일본도, 해골, 숌**과 플룻, 책, 등잔, 술통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고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물건들입니다. 가장 중심에 있는 해골은 이 모든 것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물건들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 전도서 1장 2절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어두운 가운데 해골을 비추는 빛이 눈에 띕니다. 표면적으로 이 빛은 오른쪽으로 몰려 있는 물건들의 반대쪽 즉 왼쪽에 비춤으로써 전체적 구도의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죽음과 인간의 유한성으로 대표되는 해골을 비춤으로써, 허무한 인생뿐만 아니라 그 후까지도 희망이 되는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해골에 빛이 비취듯, 어두움에 빛이 비취듯, 각 사람의 어두운 마음에도 참빛이 비췰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육신의 헛된 것과 영의 영원한 참빛,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최후의 심판”     여러분, 미켈란젤로에 대해 들어 보신적 있지요? 미켈란젤로는 정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인데요, 지금 여러분들 앞에 있는 이 그림들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작품 ‘최후의 심판’입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의 시스티나 성당에 높이 14.5m, 폭 13m 로 그려져 있습니다. 정말 굉장히 큰 벽화지요. 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6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이 그림은 단테의 <신곡>을 배경으로 그린 것인데, 전체 그림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은 천사들이고, 그 밑은 천국을 나타냅니다. 천국 아래는 ‘연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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