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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성막과 기구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

제27회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2006년 12월 29일 오후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애굽기 25:8-9)       성경에 미리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     마태복음 3장 13절부터 보겠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3-17절)       로마서에는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2) 는 말씀이 있고 베드로전서에는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0)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빈들에서, 예수께서는 목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과 이스라엘의 그림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구약 시대 모든 선지자들의 대표격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18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18-19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던 한 참 선지자가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을 예고하신 내용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태어나고 얼마 후에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참 선지자의 모습으로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요단 강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사건은 상당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릴레이 달리기에서는 앞서 뛰던 사람이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줍니다.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꼭 그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 앞에 나타나셨고, 세례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예수께서 그 몸으로 행하시고 순종하심으로써,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 있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서 있던 하나님의 의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의 내용입니다. 그 성경 속에 드러난 대 장정을 한 이야기 속에 압축시켜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침례 받는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거듭나기 전에 세례를 받은 것은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거듭난 후에 받는 것이 진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습 속에서 참 특이한 현상을 하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성령이 계신 것도 알고 아들 하나님이 계신 것도 알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 것도 알고 삼위일체가 무엇인지도 압니다. 성경에 이 세 모습의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나타나시는 장면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신 때 세 모습의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아들 하나님은 물에서 올라오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동시에 들립니다. 바로 창세 전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계셨던 엄청난 계획이 이제 이루어지는 사건이 시작될 때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딛 3:4) 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우리 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예수라는 한 분 안에 참 많은 성격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왕으로도 오셨고, 선지자로도 오셨고, 제사장으로도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주름잡던 그 참 모습으로, 그 한 몸에 모든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그분께서 그 참 모습으로 이 세상에 임하셨고, 한 목적을 위해서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놓으신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가 펼쳐진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경영 법칙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간 역사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법칙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에는 멜기세덱을 좇는 한 영원한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16절)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에 상관된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다 보면 그 후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그 생명의 능력의 법을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을 통해서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민족은 약 430년 후에 모세라는 한 사람의 지휘 아래, 어린아이와 여자, 노인들의 수를 제외한, 싸울 수 있는 장정만 육십만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애굽 땅을 탈출합니다. 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벗어나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서 겪는 사건들이 출애굽기에서부터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들이 시내 산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는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25절) 라며, 율법이 주어진 그 시내 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곳에 이스라엘 민족이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 산으로 불러올리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도 말씀하시고 돌판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이스라엘 민족이 십계명을, 율법을 받고 그대로 행하는 그 순서도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 내용을 그저 읽어내려 가기만 해서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께서 깎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깎으시고 거기에 직접 쓰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출 31:18 참조) 참 신비하지요. 그런데 두 번째 돌판이 또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으로 올라간 뒤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민족이 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모세가 그 첫 돌판을 깨뜨려 버리고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돌판을 다시 주십니다. 두 번째 돌판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면 좋겠지만, 두 번째 돌판은 모세가 깎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렇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 보아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계속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제 새로운 계명, 생명의 성령의 법을 이 세상에 이루시기 위해서 나타나실 때는 사람의 몸을 통해 태어나십니다. 예수는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신성과 인성이 그 속에 함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두 번째 돌판은 사람에게 만들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록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속에도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또 두 돌판을 통해서도, 먼저 것이 깨어지고 두 번째 것이 일어서는, 마치 신약과 구약의 시대가 교차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또 한 사건이 나옵니다.     모세 시대로부터 한참 이전인 야곱의 시대에 야곱에게는 시므온과 레위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누이가 강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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