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 헌팅턴 | EMG 편집 책임인
제가 어릴 적 살던 집에는 두 개의 식탁과 함께 커다란 부엌 식탁이 있었습니다. 네, 그랬던 것 같군요. 지금 머리 속에 떠올려 보아도 규모가 제법 컸던 집으로 기억됩니다. 그 집은 우리 집에 다섯째가 태어나고, 외조부모님들을 모시게 되면서 아버지가 장만하신 집이었습니다.
그중 식탁 하나는 방으로 옮겼는데, 그래서인지 당시 우리는 그 방을 ‘식당’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부분의 우리 일상생활이 이 방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거실’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부지런히 숙제를 했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도 하며, 언쟁을 벌이기도 했던 방이었습니다.
그 방에 놓여 있던 식탁은 아주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아마 영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그런 종류의 식탁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저희 집안은 아시아 문화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당시 어떠한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 그 식탁을 땅속에 묻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어느 날 우리 집 가장이셨던 아버지가 그 식탁의 다리를 반으로 자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여느 식탁과 다를 바 없는 넓이에, 높이는 바닥에서 18인치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상야릇한 식탁을 늘상 구경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렇게 식탁의 모양을 변형시키자, 기존에 그 방에서 하던 다양한 활동들을 훨씬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식탁은 이와는 경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짙은색의 나무 식탁은 아무도, 심지어 아버지조차 톱을 데지 않으셨던 것으로 다리 부분이 잘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이 식탁은 우리가 앞방이라고 부르는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방은 피아노를 친다던가 일요일 점심식사 때. 혹은 특별한 가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용되었습니다.
60년대 초에도 지금 시대에 못지않게, 6명의 가족(당시 제 조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 중 한 명은 우리와 같이 살지 않았습니다)은 하나같이 바빴습니다. 모두 각자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를테면 스포츠 행사나 음악 수업, 소년소녀 동아리 활동, 학교와 일 등의 일로 심지어 토요일에도 모든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요일 점심식사 시간이 어느새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유일한 시간으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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