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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 모두가 죄인이다

1998년 미주 성경탐구모임 7월 21일 오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어떤 분은 성경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 속에 듣기 거북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다 좋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의문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겁을 내게 하기도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마치 제련소와 비슷합니다. 제련소에서는 쇠나 금을 녹여 그것을 틀에 부어 어떤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 반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금을 망치로 때려서 일곱 등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금을 녹여 틀에 부어서 만들면 되었을 텐데 왜 굳이 망치로 때려서 만들었을까요. 요한계시록에는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1:4)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언가 단련시키는 내용의 글들인 것입니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고통에서 탈출해 나와 광야 생활을 할 때, 그 일곱 등대를 만드는 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등대를 망치로 쳐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망치로 쳐서 만든 것 같은 역사입니다. 어떤 정상적인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유대 민족을 이리저리 두들기고 돌리고 치셨습니다. 어떤 때는 세게 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약하게 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통통 치는 등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때려서 등대를 만들어 방에 두고 불을 켭니다. 예수께서는 직접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그와 같이 우리도 이 성경 말씀이 내게 좋은 소리이든 나쁜 소리이든 내 생활의 어떤 부분이 두들겨지든 계속 성경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어떤 정상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말씀을 보며, ‘내게는 빛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 내가 무슨 빛이 되겠느냐’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달빛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달이 스스로 빛을 냅니까? 아닙니다. 달은 표면에 반사된 태양 빛을 비췰 뿐입니다. 다만 빛을 반사하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맑아야 합니다. 깨끗할수록 빛도 더욱 깨끗하게 반사되어 비췹니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달은 얼마나 맑을까요? 달 표면은 지구와 흡사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지구에서 볼 때는 달 표면에 있는 언덕이나 계곡 등의 높낮이는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하나의 구(球)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면 에베레스트 산도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습니다. 이 지구도 다른 위성에서 볼 때는 빛을 반사하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있기 때문에 다른 행성들보다 더 많은 빛을 반사할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들은 각자의 누추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방법에 내 개인의 문제를 투영해 보면 그런 것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자신에게 문제가 되고 죄덩어리가 되고 엄청난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죄를 지은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빛을 반사하고 싶어도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빛을 받지 못하고 반사하지도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가진 개인의 모든 문제들은 우리를 괴롭히고 착잡하게 하고 외롭게 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탕자가 먼 곳에 있는 남의 집에서 돼지나 치고 돼지가 먹을 것을 주워 먹으며 비참하게 산다 하더라도 그 아버지는 아들이 이제나 돌아올까 저제나 돌아올까 하는 심정으로 기다렸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심정을 예수님의 입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눅 15:20), 거리는 멀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이미 그 아들에게 가 있었고 아들의 마음은 아버지를 떠난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이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성경을 통해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어느 정도나 멀리 있었던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11-13)       멀리 있던 너희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인간은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부모님 아래 태어날 수도 있고 남들이 칭찬하는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문이 좋고 지위가 높은 부모님 아래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가 매일 싸우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괴로움만 안겨주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이러한 모든 사람을 바라보시는 하나님만의 관점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살피는 관점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삶을 더듬어볼 수 있는 어떠한 매개체도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치 거울이 내 얼굴을 비추어 주듯이, 우리를 바로 보게 해 줍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서 좋은 대접을 받고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또 좋은 환경에서 자라 공부해서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호화로운 생활 속에서 자라서 버릇이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또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싸우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꼭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하여 정숙하고 얌전하게 자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각자 다양한 모습을 지녔듯이 인간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성경에서 말한 선의 기준으로 인간을 보면, 아무리 종교 생활을 열심히 했든 양심적인 생활을 했든, 인간에게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하는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한 사람을 더 의롭게 보셨습니다. (눅 18:10-14 참조) 사람이 스스로를 선하고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선은 인간 사회에나 필요한 것입니다.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욥 35:7-8) 고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상당히 아팠는데 그래서인지 키가 자라다가 멈추었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 갔을 때 누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구경시켜 주겠다기에 억지로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 빌딩의 옥상 전망대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주변 경관을 보고 밑을 내려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가 ‘미국에는 키 큰 사람만 사는 줄 알았더니 전부 똑같이 보이네요. 머리 위만 보이니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전부 똑같아 보이는군요.’ 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보실 때는, 이 성경 구절의 한 마디와 같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 말씀에 반해, 자신은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법을 잘 지키는 이로 인정받을지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점점 더 멀어지는 사람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19-20)       율법이라는 커다란 돋보기, 그 현미경을 통해서 보면 인간 중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은 온 세상이 전부 죄 아래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왜 주어졌습니까? 율법은 죄가 없다고 자부하는 모든 인생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읽어 보면, ‘아! 내가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한 가정의 가장이면서도 아직도 율법을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율법에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적나라하게 다 적혀 있습니다.       그 율법과 그 계명은 날 가르친 율법일세주 함께한 새 언약은 그 흘린 피 내 증걸세  (새찬송가 249장)       율법은 모든 인생이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청진기는 병을 낫게 하는 것입니까, 진단하는 것입니까? 청진기는 병을 진단하는 데 사용합니다. 청진기가 병을 낫게 하거나, 약인 줄 알면 큰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율법을 애써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율법에 매여서 일생을 율법의 종 노릇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10-18)       이 성경을 읽으면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참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죄에 맞서 양심대로 살려고 하는 또 다른 마음의 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대로 살려고 자꾸 자기 의를 쌓아 가고, 그것은 자신의 죄성을 덮을 새로운 갑옷이 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는 말씀은 모든 인류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미만 자라는 정원에 해바라기가 쑤욱 올라왔다면, 그것은 장미가 해바라기로 변한 것입니까? 까만 콩을 심어 놓은 밭에 하얀 콩이 났다면, 그것은 까만 콩이 하얀 콩으로 변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원래 있던 하얀 콩이 그대로 자란 것일 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죄악 세상에 사는 인간은 죄 때문에 양심껏 살려는 종교 심리를 가지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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