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7년 7월 29일 오후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호세아 11:1)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이스라엘이라는 거울
호세아서 11장, 12장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 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며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궤휼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 저는 상고여늘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하는도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수고한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내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일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저희는 과연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옛적에 야곱이 아람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선지자로 저를 보호하셨거늘 에브라임이 격노케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 주께서 그 피로 그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저의 수치를 저에게 돌리시리라
선지서 중 특히 호세아서에는 에브라임이라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 자주 나옵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장자입니다. 야곱의 장자입니다. 순서상으로는 제일 마지막에 태어났지만 축복받는 대열 속에서는 장자로 기록됩니다. (창 48장 참조) 역대상에도 그 내용이 나옵니다. (대상 5:1-2 참조) 그래서 여러분이 이런 글들에 ‘에브라임’이라고 쓰인 것을 보시면 이스라엘, 특히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이 나누어져 있던 이 시대에서는 북이스라엘 왕국이라고 생각하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에브라임을 일컬으면서 이스라엘 전체를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누구를 향한 이야기일까요. 여러분 중에 영화에서 보았다든지 주일학교에서 배우신 분들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했고, 신약 시대에 그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정도까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은 이유가 있습니다. 호세아서 11장, 12장에 나타난 많은 말씀들을 한 구절 한 구절 떼어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런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향해 말씀하고 계시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방법을 모르고 그냥 아이들이 부모가 떠 주는 밥을 받아먹는 식으로 성경을 대하면 상당히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 호세아 11장, 12장 내용 중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는 이야기, 예를 들면 12장 8절의,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와 같은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적으로 표출해 낸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는 이것을 에브라임의 이야기나 이스라엘 민족의 지난 역사 속에서 보여 주었던 그들의 태도였다고만 치부하고 넘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절 중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 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런 구절을 대하고 ‘아, 그분은 이미 나를 용서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구나.’ 하는 것을 마음속에 깨닫고 하나님 앞에 거듭난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먼저는 누구를 향해 쓰인 말씀일까요. 이사야 40장부터 44장까지 읽어 나가다 보면 조금 혼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전부 연결해서 읽어 보면 그 내용이 어떤 개인이 아닌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들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답답해하는 목소리가 숨어 있고 그 민족을 용서하는 목소리도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관계도 없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성경을 읽다가 거듭날 수 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 성경을 기록하셨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역사가 진행되어 가고, 그 진행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그들의 운명이 나의 운명과, 나의 생애와 매우 밀접하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법으로 죄를 씻는 구속의 역사를 경영하셨기 때문에, 그 속에 우리도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순서입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하는 그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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