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이 강연은 제41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중 2009년 7월 25일 저녁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의 내용은 성경을 한 번이라도 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성경을 손에 들게 되면 제일 먼저 펴는 부분이 창세기 1장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창세기 1장을 여러 번 읽었고, 창세기 강해 설교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창세기 강연을 하고 나면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모습을 그릴 때, 그리면서는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다 그리고 나서 보니까 비슷하게 닮긴 했어도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어떻게 이 세상의 질서를 잡아나가시고 어떠한 방법으로 사람이 세상에 살 수 있도록 하셨는지, 또 어떻게 말씀으로 그것을 끌고 가셨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가면 읽어 갈수록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우리 앞에 점점 더 깊어지고 또 점점 더 넓어집니다.세상에 매우 많은 말들과 글들이 있는 가운데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우리가 하는 말처럼, 또 우리가 하는 생각처럼 받아들이고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짧은 한 문장이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그다지 중요한 내용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온갖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 쟁취하려고 하는, 흔히 구원이라고 하는 영원한 생명은 물론이고, 성경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모든 의문의 열쇠가 이 말씀 속에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성경을 믿는 믿음의 기초석과 같습니다.한번 생각해 봅시다. 문이 하나밖에 없는 아주 크고 넓은 홀이 있습니다. 홀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담을 넘거나, 창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에 자물쇠가 딱 하나 있고 그것이 잠겨 있다면, 자물쇠를 열지 않고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 누가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쇠로 그 문을 열어 보면, 그 안에는 바깥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창세기 1장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페이지나 글자 수로 보면 그 내용은 상당히 짧습니다. 짧은 소설의 분량도 안되고, 어지간한 수필보다도 짧습니다. 긴 시를 쓴다면 그 정도 길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성경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잘 이해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또 겉으로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알아간다면, 또 그 마음을 세상에 쏟아 부으시며 한꺼번에 선물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아간다면, 우리는 그 후에 나타나는 엄청나게 방대한 성경 속의 역사적 진리와 그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께서 사람 사랑하는 방법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항상 닫혀 있는 것 같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처럼 큰 것이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저는 창세기 1장을 굉장히 좋아하고, 항상 조금은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다른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비해서 창세기를 펴면 무언가 마음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끌리고 이것을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 무엇 때문에 이런 말들이 기록되었을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을 택하셔서 일하셨을까? 무엇 때문에 이 성경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이런 방법으로 표현했을까?’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내용이 지니는 의미뿐 아니라 그러한 표현 방법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합니다.그런데 우리는 창세기를 읽을 때, 글자 뒤에 숨은 많은 의미들과 역사적으로 따라오는 사실들을 생각하기 전에, 겉으로 드러난 표현들만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하신 한 마디 말씀만을 성급하게 해석해서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 전, 인류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수백만 년 전, 수백억 년 전의 어느 날에 이 땅과 하늘을 만드셨구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 전에 그것들을 만드신 것은 사실입니다.그런데 “태초에”라는 표현을 읽었을 때, 과연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여러분이 태어났던 때 즈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대통령은 누구였고, 어떤 전쟁이 있었고, 어떤 혁명이 있었고, 또 우리 가족 중에는 형님이 있었고, 누님이 있었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내가 어느 날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내 삶이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우리는 창세기를 펴고 “태초에”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그렇지. 아주 옛날에 그 언젠가.’ 라는 식으로 ‘태초’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내 생명의 시작점이 언제였는지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과거에 내가 겪었던 많은 일들이나 어릴 때부터 간직해오던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할지라도, 내 생명의 시작점이 언제였던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절과 3절도 보겠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이 말씀을 분명히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는데, 창세기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신 말씀과 비교해 볼 때, 어떤 말씀이 더 오래 전 일을 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어머니 몸속에서 내 생명이 시작되었던 날, 그리고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을 기억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듯이 이 “태초에”라고 하는 시간은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간임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억지로 해석해서 몇 백만 년 전, 몇 백억 년 전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까마득한 시간이 지나온 영원입니다.하나님이라는 분은, 우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건강하면 팔십 년, 구십 년을 살다가 죽는다는 식의 시간 개념, 지구가 태양을 몇 바퀴 돌고 나면 몇 년이 흐르고 나이가 몇 살이 된다 하는, 우리 인간이 계산하는 시간 개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입니다.우리는 흔히들 ‘영원하다’는 말을 합니다. 영어로는 ‘eternity’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하다’고 했을 때, 훗날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시간, 아직 오지 않은 시간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과거에 이미 지나간,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계산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께 속한 어느 시간에 대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여러분들께 드리고 있는 저도 이 “태초에”라는 시간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